[임영상의 글로컬 뷰] 경주 고려인마을 보니 ‘천년고도’ 돋보여
지난 3월 24일 영천 고려인모임(오후 2시 30분) 참석에 앞서 먼저 경주 성건동 고려인마을을 찾았다. 2018년 10월 첫 방문 때 “아니 경주에도 고려인마을이…” 놀랐던 기억이 새로웠다. 그 후 2019년 아시아발전재단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조사사업, 다시 2021년과 2022년 경북대 사회과학원 행사를 마치고 경주를 찾았으니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이번에도 지난번 보지 못했던 고려인 상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려인태권도장도 있다. 2022년 1월 고려인 김루슬란 관장이 세웠으며 2023년 9월 ‘2023년 경상북도 또바기체육돌봄 태권도 교실’이 열리기도 했다. 이주 및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스포츠 복지 실현과 사회문화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경상북도체육회가 처음으로 공모에 선정된 사업이었다.
청주 봉명동 고려인 사범이 가르치는 충인 태권도장과 고려인 교회(New Zabet)가 문을 연 권투교실, 천안 신부동 고려인 Elizer 레슬링클럽 등 부모를 따라 들어온 고려인 학생들이 ‘낯선 땅’ 코리아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한 한국인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경주 흥무초 신입생 90% 이주배경 학생’ 지난 3월 28일 <경주신문> 이필혁 기자가 <경주신문.>과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 제목이다. 2024학년도 신입생 54명 중 49명(90.7%)이 이주배경 학생인데, 2023년은 1학년(신입생) 학생 43명 중의 35명(77.2%)이었다. 저출생으로 학령아동이 줄고 있는데 흥무초등학교는 학생도 늘었고 또 이주배경 학생의 비중도 커졌다.
2023년 경주 흥무초등학교(전교생 381명)는 248명의 다문화(이주배경) 학생 중에 210명(86%)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고려인 학생이다. 이에 흥무초등학교는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내·외국인학생 통합성장’ 연구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나,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고려인 학생이 절반이 넘게 되자 고려인 학생들끼리 러시아어로만 대화하고, 소수가 된 한국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고려인 학생을 돌봐주는 일도 꺼리게 되었다. 고려인 학생을 나눈 결과, 가르치는 교사도 부담이 줄어들고 학급 분위기도 좋아진 대구 북동초등학교의 사례가 참고될 것이다. (<아시아엔> 2023-7-11 [달성 고려인마을②] 대구논공초등학교에서 만난 이태윤 교사)
그런데 흥무초 인근 계림초는 신입생 20명 중 이주배경 학생이 14명(70%), 월성초는 신입생 24명 중 이주배경 학생 15명(62%)이다. 필자 생각은 다음과 같다. 역사도시 경주는 고려인동포에게도 살기 좋은 곳이다. 그러나 인구감소 지역인 영천 등 이웃 도시가 고려인동포를 위한 인프라(한국어수업, 자녀교육 등)를 갖추고 초청한다면, 또 비자특례가 필요한 동포가족 중심으로, 삶터를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지난 3월 24일 애초 방문 목적지인 경주 하이읏이주민센터(하이웃교회)와 우리작은도서관에 도착했다. 마침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종려주일이다. 하이웃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과 애찬(愛餐)을 나누었다. 적은 수가 참여했으나 성만찬까지 가졌으니 힘든 한국살이에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김조훈 담임목사의 배려로 아침 일찍 서울에서 경주에 온 이유와 또 곧 영천에 가서 고려인동포 가족을 만날 일정을 소개했다.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동포가족에게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도 설명했다. 하이웃교회 성도들은 이미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옆자리에 앉아 식사한 에사노프 아바쓰(Esanov Avaz)는 방문동거(F-1) 비자로 곧 영천으로 이주할 것이란 사실도 이야기했다.
하이웃교회가 운영하는 하이웃이주민센터는 2015년 경주시 외동읍에서 외국인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실과 무료진료를 비롯한 각종 상담 활동을 시작했는데, 2017년 성건동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문화센터를 개소했다. 지역의 이주배경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자 2019년 1월 이주배경청소년을 위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는 ‘우리작은도서관’을 시작했다.
우리작은도서관은 현재 5년째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레인보우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2023년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24년 3월 현재, 40여 명의 이주배경 청소년들이 방과 후 학습을 통해서 한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교과목 학습을 비롯하여 동화구연, 미술과 바이올린, K-POP 댄스, 요리교실과 같은 다양한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 1~4학년 13명, 초등학교 5~6학년 14명, 중학생 10명, 고등학생 2명, 학교밖 청소년도 1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대부분 흥무초등학교 학생이다. 계림초등학교와 월성초등학교 학생도 있다.
중학생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특별히 토픽반을 운영하고 있고, 교과목(영어, 수학)을 학습하면서, 진로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특별히 고려인들 가운데 멘토가 가능한 대학생 선배들이나 이미 한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들을 통해서 진로에 도움을 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2023년 공식통계로 고려인은 이미 10만명이 넘었으며, 12만명에 이른다는 얘기도 있다. 2022년 경북행복재단은 ‘경상북도 고려인 실태조사와 지원정책 연구’에서 2021년 경북의 고려인을 4,843명으로 조사했는데, 경주시가 4,332명, 경산시가 151명, 영천시가 119명 순서였다. 경주가 거의 90%에 달했다. 이 중 영천시가 인구감소지역에 들어갔는데,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 기간(2022.10.4~2023.10.3)에 비자 혜택을 누리기 위해 수도권과 경주에서 인구감소지역 영천으로 이주한 고려인이 400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2024년 3월 현재 그 절반이 영천을 떠났다. 어떤 이유인가? 영천의 고려인의 삶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