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고려인 3세 가족, “우리도 영천에서 살게 해주세요”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23년 3월 31일에 이어 지난 3월 24일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센터장 장성우)를 찾았다. 꼭 1년 만이다. 지난해 만났던 심스베틀라나-주마예프 플로프 부부는 아쉽게도 러시아 볼고그라드로 돌아갔다. 방문동거(F-1) 비자는 일할 수 없는데 대구 출입국 외국인사무소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불법취업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려인 3세인 심스베틀라나가 몸이 아파 러시아인 남편이 일할 수 없었는데, 인구감소지역 영천시에서는 ‘허가’를 받아 일할 수 있다고 해서 경기도 안성에서 영천으로 왔었다.
지난 3월 24일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서 만난 고려인 모두 F-1 비자를 소지한 고려인 3세 가족이었다. 필자는 다시 절감했다. 연구자도, 공직자도 늘 현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날 필자는 지역특화형 비자(외국국적동포) 사업의 어려움과 현실을 절감했다. 아래는 영천 고려인모임 대화에서 나온 내용의 요약이다.
① 수도권과 경주에서 400여 명이 이주했는데, 현재 200여 명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② 방문동거(F-1) 비자로 일하러 왔는데 일하지 못하고 있다. “왜, 우리가 영천에 왔는가?”
③ 영천 고려인들, 제천시의 고려인 이주·정착 지원 잘 알고 있었다. 영천시는 어떤가?
④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 대한 영천시의 지원이 필요하다. 주말 한국어교육 등.
마침 영천 고려인모임에 참여한 고려인 동포가족이 경상북도지사와 영천시장에게 드리는 호소문(편지)이 도착했다. 작성은 아산에서 이주한 텐 디랴라, 번역은 그날 통역을 맡았던 우즈베키스탄 결혼이주여성인 쿠반디코바 아지자가 번역했다. 아래는 영천 고려인의 호소문 일부다.
“우리 가족은 (지역특화형 비자)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영천으로 이주했으며, 배우자 중 한 명은 F4 비자 소지자이고 다른 한 명은 F1 비자 소지자인 고려인 3세 가족입니다. 한국의 F1 비자에는 취업 허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F1 비자도 일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다고 해서 우리가 영천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많지만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모 중 한쪽이 일할 권리가 없으면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듭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F1 비자는 비근로 비자이고, 고용주는 F1 비자가 비근로 비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고용이 거부됩니다…F1 비자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 취업 단순화를 요청드립니다. 그리고 고용주를 찾고 고용 계약을 해결하는 데 경상북도와 영천시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2024년도 지역특화형 비자[외국국적동포] 사업, 경북에서는 어느 곳이 가능할까?
정규사업화가 된 2024년도 지역특화형 시범사업에서는 외국국적동포도지역특화동포 비자(F-4-R)를 받기 위해서 광역지자체장의 추천이 필요해졌다. 현재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영천살이를 하는 방문동거(F-1) 가족들도 영천시 담당 공직자와 만나야 하고, 경상북도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담당하는 K-드림외국인지원센터와 또 경상북도 외국인공동체과도 정확한 현황 파악을 하고 이를 법무부에 알려야 한다.
필자는 4월 3일 개최될 경북연구원 주최의 경상북도 경제생활인구 확보와 외국인 활용 방안 세미나에서도 언급할 예정이다. 2024년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경상북도의 15개 시군 중에서 [외국국적동포] 사업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물론 15개 시군 모두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조사·확인한 바에 따르면, 중국동포 가운데서 수도권을 떠나 인구감소지역 지방으로 이주할 동포가족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고려인동포는 지방의 거점도시에 집거해 살고 있어서 인근 인구감소지역으로 이주가 가능한 상태다. 바로 영천시가 가장 유리한 조건이다. 4천여 명의 고려인가족이 너무 과밀한 상태에서 성건동과 그 주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2023~2023년 수도권과 경주(성건동), 대구(논공읍) 등에서 영천으로 이주한 고려인동포 가족은 영천시와 경상북도가 조금만 보듬으면 영천을 고향으로 영천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3월 24일 영천 고려인모임에도 참석한 71세 퇴직교사인 서정훈 한국어교사가 매주 일요일 9시~10시 30분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서 고려인동포를 가르치면서 쓴 소감이 가슴에 와닿았다.
“고려인, 과연 우리 민족! 저는 70세 고려인담당 교사 서정훈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영어 전담교사를 하다 정년퇴직하고 귀향해서 회사경비를 하는 중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고려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2023년 11월부터 매주 일요일 9시~10시 30분까지 영천시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서 가르치는데 학생은 어른 8분, 중학생 1명, 초등학생 2명입니다. (중략) 처음 시작할 때 일주일에 두 시간 공부해서 효과가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했는데 어른들의 눈동자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중략) 3주째부터 교재를 가지고 가르쳤는데 더듬거리며 쉬운 말을 한두 개 읽는 정도여서 제가 교재 내용을 천천히 1번, 보통으로 1번 녹음해서 파일을 만들어 단톡방에 띄워 놓고 집에서 예습, 복습 숙제를 내었더니 학습 속도가 향상되었습니다. (2023년) 12월 17일 이사장님께서 어른들이 교재를 혼자서 읽는 걸 보고 깜짝 놀라셔서 기분이 좋다고 파티까지 열어 주셨습니다.
(중략) 그들의 눈빛과 열정에서 우리 세대가 어린 시절 가난했을 때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이 악물고 공부했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 고려인 또한 우리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압제를 피해서 러시아로 이주해서 억척스럽게 산 우리 조상들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며 수업 마치고 학생들 보내는 제 가슴 속에는 형언할 수 없는 잔잔한 기쁨이 세속에 때 묻는 저를 치유하고 있는 걸 봅니다. 2023.12.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