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충북 제천이 ‘고려인의 고향’ 될 수 있을까?

김창규 진천시장(오른쪽에서 4번째)이 이알카지 목사(왼쪽에서 4번째) 일행을 환영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고려인의 나라’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반드시 들리는 곳이 두 곳이 있다. 2005년 한국정부가 김병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한 김병화박물관과 2010년 한국정부가 강제이주 세대 고려인 홀몸노인을 위해 설립한 아리랑요양원이다.

김병화박물관

김병화박물관은 소련 정부가 1급 노동훈장을 두 번이나 탄 고려인의 영웅 김병화 사후(1974년)에 이름까지 바꾼 김병화 콜호즈(러시아어: колхо?з)에 있고, 아리랑요양원은 연해주 파르티잔스크 지역 고려인들이 ‘신영동’이라고 불렀던 크레포스치 콜호즈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어 만든 스베르들로프(시온고) 콜호즈에 있다.

소나무길

아리랑요양원은 콜호즈 중앙로의 소나무길과 한 블록 거리에 있다. 조국의 ‘고향’을 생각해서 비싼 소나무를 일부러 심었다고 했다.

임영상 필자, 이알카지 목사, 이오석 목사(왼쪽부터)

1937년 강제이주로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현지인 콜호즈에 편입되기도 했으나, 주로 독립 콜호즈를 조직했다. 고려인사회의 경제공동체이자 현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문화공동체인 고려인 콜호즈는 이미 옛 모습을 잃었다. 소련 해체 이후 이름이 바뀐 곳도 많다. 그렇지만, 아직도 고려인은 소련 시절의 콜호즈 명칭에 익숙해 있다. 그들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일군 ‘콜호즈’는 여전히 고려인의 ‘고향’이다. 한국에서 새 삶터를 일구는 귀환 고려인동포도, 할 수만 있다면, 한국의 농촌에서 농사공동체를 이루고 싶어 한다.

2023년 12월 14일 <한국에서 고려인마을을 찾다> 출판행사를 제천에서 갖는다고 하자 여러 사람이 물었다. “제천에 고려인들이 많은가요?” “왜 제천에서 출판행사를 개최하나요?”

인구감소 시대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정책으로 2022년 10월부터 1년간 시행된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 기간에 지자체 차원에서 ‘외국국적동포’ 사업을 추진한 것은 제천시가 유일했다. 2023년 10월 제천시에는 고려인동포가 5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고려인동포와 상생 발전하는 제천시!”의 의지와 비전에 성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아발전재단과 동북아생명누리협동조합 공동주최로 출판행사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의병의 고장’ 제천이 ‘고려인의 고향’이 될 수 있겠다!

2024년 3월 현재, 제천에는 고려인동포 가족 100여 명이 이주했고 고려인 상점도 세 곳이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고려인의 고향’이 되기 위해서는 제천 땅에 고려인 농업공동체인 ‘콜호즈’가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충북 제천 땅을 찾은 경기도 시흥시 고려인농사공동체

필자는 지난해(2023년) 7월 31일 ‘재외한인 구술생애사’를 간행해온 경북대 사회과학원 박신규 연구교수에게 시흥에서 농사공동체를 이끄는 고려인동포 이알카지 목사를 소개했다. 이알카지 목사에게 법무부의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을 소개하면서 최소 2년 이상 거주 조건으로 인구감소 지역 지방 중소도시로 이주하면, 지역특화동포(F-4-R) 비자를 받아 안정적으로 한국생활을 할 수 있고 장차 영주권 취득도 유리하다고 전했다.

1954년 김병화 콜호즈에서 출생했고, 1997년 한국에 들어와 온갖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은 이알카지 목사도 한국의 인구감소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지방 마을로 내려가서 그 땅을 개발하자. 고려인 노인들이 손자들을 돌볼 수 있는 어린이집도 운영하자. 주말에는 도시에 나가 일하는 자녀들이 농촌마을에서 쉬면서 아이들과도 놀 수 있게 하자. 이것이 바로 한국을 살리는 길이 아니겠는가.”라고 자신의 비전을 설명했다.

동북아생명누리협동조합 이사장인 이오석 목사도 이일카지 목사를 알고 있었다. 필자와 이오석 목사는 이알카지 목사를 제천에 소개하기로 하고 먼저 2월 27일 서울에서 만났다. 이알카지 목사는 박신규·이토히로코가 공저한 <고려인 3세 이알카지 목사의 생애사>(책과세상, 2024) 책을 우리에게 선물했고, 필자도 이알카지 목사에게 <한국에서 고려인마을을 찾다>(북코리아, 2023) 책을 선물했다. 우리는 키르기스스탄 대사를 역임한 김창규 제천시장의 고려인동포 초청 정책을 소개하고 시흥 고려인 농사공동체의 제천 방문을 협의했다.

지난 3월 11일 동북아생명누리협동조합 이오석 이사장과 제천 영화감리교회 김형국 목사의 안내로 시흥시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기독교 시온공동체를 이끄는 이알카지 목사 일행이 제천시(봉양읍 원박리) 땅을 찾았다. 제천의 시민단체를 섬기는 김형국 목사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수업도 운영하는 제천솔뫼학교 등을 소개했다. 아울러 제천시민들도 ‘고려인의 새로운 고향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합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오석, 정대호, 김형국, 정은, 이알카지, 장로자, 김빅토리아, 베류다, 전마야(사진 왼쪽부터) 

이어서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유창한 러시아어로 진행한 오성환 센터장의 안내에 이알카지 목사 일행은 만족과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이후 일행은 제천시청으로 이동, 김창규 제천시장의 환영을 받았다. 김창규 시장은 ‘제천시 고려인동포 주민증’까지 만든 제천시의 고려인동포 정책을 소개하면서 제천을 ‘고려인의 고향’으로 만들자고 권유했다.

물론 제천이 아닌 다른 인구감소지역 지방의 중소도시에도 고려인 농사공동체(콜호즈)가 형성될 수 있다. 다만, 귀환 고려인동포와 함께 살겠다는 지역주민의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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