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광주고려인마을, 뜻과 힘 모아 ‘앞장’

2024년 1월 다시 찾은 광주고려인마을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왼쪽부터 필자, 김병학, 전승일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인권센터와 재외한인학회 공동 주최 세미나에 초대받았다. 작년 12월 13일 충북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 <한국에서 고려인마을을 찾다> 출판 행사에 참여한 광주향토문화개발 전승일 사무국장이 광주송정역까지 마중 나와 저녁에 서울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함께했다.

우리는 먼저 월곡동 광주고려인마을로 향했다. 얼마 전에 상설전시실을 새로 꾸민 월곡고려인문화관에 도착했다. 김병학 관장 안내로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고려인의 생활문화 자료 등이 보완되었다. 김병학 관장은 고려인들이 직접 만든 ‘화투’에 애착을 보였다. 화투놀이는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후에도 고려인사회에 널리 행해진 전통놀이로 고려인들은 화투로 한 해의 운세를 점치기도 했다.

메주 만드는 장면

2012년 문화재청(국립무형유산원)이 발주한 ‘해외 전승 무형문화유산 학술조사’가 생각났다. 당시 한국외대 연구팀은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고려인사회를 방문, 조사했다. 당시 자료를 찾다가 타슈켄트주 스베르들롭프(시온고) 콜호즈 황나제즈다 집에서 삶은 메주콩을 으깨어 메주를 만드는 사진이 나왔다. 고려인이 전승해온 무형문화유산을 다시 한국의 고려인마을에서 되살리면 어떨까. 한민족문화의 다양성이 아닌가.

고려인 화투(오른쪽)와 고려인 음식 상차림(가운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그날 오전 11시에 광주고려인마을 노인돌봄센터가 문을 열었다. 고려인종합지원센터 1층 어린이집을 노인돌봄센터로 만들었다. 고려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국에 온 것은 ‘외국인 가정’이라 보육료 혜택도 없는 어린 손자녀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손주들은 학교에 다니고 무료해졌다. 건강한 노년을 위한 ‘노인유치원’이 절실해진 것이다.

광주고려인마을의 노인돌봄센터

광주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는 “마을에서 최고령 노인이 93세이고 오늘 100명 이상이 참석해 고려인 잔치 음식(플롭)으로 점심을 먹었다”라고 했다. 뒤이어 자리를 함께한 이천영 목사는 “고려인마을에 이미 70~80대 노인이 200명이 넘었다”고 했다. 중국동포와 달리, 고려인동포 노인 가운데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 거의 없다. 한국어 소통도 어렵지만, 경로당 자체를 이용할 수 없다. 고려인 노인복지가 고려인사회에도 현안이 되었다. 근래 유치원이 문을 닫고 노인유치원이 늘어나고 있는데, 노인돌봄센터는 바로 고려인 노인유치원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노인유치원 <사진 양철배>

.고려인의 주민권과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세미나의 주제는 ‘국내 귀환동포의 법적 지위와 인권’이었다. 필자는 ‘고려인동포의 주민권’에 대해 발표했다. 고려인동포의 ‘법적 지위’는 코리아에서 코리안이 아니라 외국인일 뿐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한국 국적을 보유하지 못한 외국인이지만 동시에 ‘지역주민’이다. 그런데 그들은 코로나19 시기에 공적 마스크 구매나 재난지원금 지원에서 배제됐다.

근래 고려인사회에서도 영주권(F-5) 신청이 많아졌다. 영주권을 취득하면, 건강보험료 부담도 줄어들고 범칙금 등으로 쉽게 추방되는 것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무부가 시행 중인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고려인동포의 한국살이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89개 인구감소지역에 거주 및 취업․ 창업하려는 외국인에게 거주(F-2) 비자를 발급하는 ‘지역우수인재’ 사업과 외국국적동포와 그 가족(배우자, 자녀)에게 체류상 특례를 부여하는 ‘외국국적동포’ 사업이다. 바로 후자인데, 고려인동포가 받을 수 있는 특례로 영주권 취득이 쉬워지고 일을 할 수 없는 타민족 배우자인 방문동거(F-1) 소지자도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특화형 비자 시범사업(2022.10.4~2023.10.3) 기간에 경주고려인마을 지도자인 장성우씨는 경주에 사는 고려인 가운데 인구감소지역인 영천으로 이주하면 비자 특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 영천시고려인통합센터를 설립했다. 그동안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 영천의 400여 고려인동포 가족은 ‘지역주민’으로 삶터를 일구고 있다. 고려인동포들이 경주보다 멀리 수도권에서 이주했지만. 충북 제천의 경우는 시 당국이 주도해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제천시 고려인주민증’까지 발급하는 등 고려인동포와 상생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필자는 광주고려인마을 한국인 지도자 이천영 목사에게 전국의 고려인마을을 탐방한 소감을 전했다. “고려인 학생이 30%를 넘어가자 한국 학생이 전학을 가고 고려인 학생도 러시아어만 하는 등 수업 분위기가 어려워졌다.” 전남과 전북 등 1시간 내외 거리의 인구감소지역 지자체가 고려인마을을 조성하려 한다면, 광주고려인마을은 ‘큰집’으로 한국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고려인 인재’를 보내는 등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인구감소지역 지자체는 고려인동포 가족 덕분에 경제·생활인구가 늘어나고 고려인동포는 비자 특례도 받고 자녀교육과 노인복지에서도 지자체의 적극적인 배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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