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인천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의 ‘야 까레예쯔’

인천 함박마을고려인 주민회의 3.1운동 105주년 기념 축제 포스터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인천 연수1동 함박마을의 고려인은 약 8000여 명으로 면적 대비 최대의 고려인 밀집지역이 되었다. 전국 고려인마을마다 고려인지원센터가 설립되고 또 고려인 주민들도 나름대로 단체활동을 하고는 있으나 대부분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교류 및 활동이다.

이런 가운데, 2021년 4월 17일 국내 최초로 고려인마을 주민회가 인천광역시 연수구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서 발족했다. 처음에는 인천고려인문화원이 지원했지만, 2019년 12월부터 연수구청 도시재생센터에서 연락해 고려인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2020년 5월부터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할 고려인자치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고려인들의 할머니봉사단, 엄마들 모임, 상인회, 청년회, 장애인 가족모임 등이 공식 발족했다.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가 창립한 것이다.

최근 고려인주민회 리빅토르 회장이 3.1운동 105주년 기념 축제 홍보 포스터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주최/주관에 한국인 NGO 단체나 연수1동 행정지원센터 등의 기관 이름이 없이 오직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만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하는 고려인 가수 리사샤와 한반도기를 든 NGO ‘원하다’ 청년들

“야 까례예쯔”(나는 한국인입니다, I’m Korean) 홍보 포스터에는 무궁화꽃으로 장식한 한반도 지도와 태극기를 든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축제장에서 고려인이 들고 있는 것은 태극기가 아니라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 로고인 ‘한반도기’였다. 또한, 고려인주민회 단독으로 가진 행사를 지원한 것은 리빅토르 회장이 참여하는 고려인비즈니스클럽연합회(UKBC)였다. 고려인주민회 산하 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저명한 고려인 가수 리사샤 등이 자원봉사로 재능 기부한 덕분에 축제는 최소 예산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3월 1일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추운 날씨 속에 출연자와·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경연대회가 흥겹게 진행되었다. 축제를 기획, 주관한 리빅토르 회장은 지자체나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축제를 개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뜻만 있으면 할 수 있고,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을 가지면 일이 더 쉬워진다고 생각했다.

리빅토르 회장은 3.1운동 기념축제로 기획한 “야 까례예쯔” 축제를 삼일절 행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축제 제목을 러시아말로 “Я – КОРЕЕЦ”(야 까레예쯔)라고 쓴 것은 다양한 한민족이 국적 등 차이점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자고 생각했다. 3.1운동 기념 축제이니 태극기도 준비할까 했는데, 현재 한국에 사는 우리 한민족 모두 “야 까레예쯔”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반도기만 준비했다고 했다.

고려인 가수 리사샤는 재능기부를 했고, 북한에서 온 아코디언도 참여했다. 조선족 동포 예술인도 초청하고 싶었는데 직접 연결이 안 됐다고 했다. 내년에는 초청할 예정이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2025년 함박마을 “야 까레예쯔” 행사에 바란다

필자는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삼일절 행사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2025년 3.1운동 기념 “야 까례예쯔” 행사에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소개했다.

삼일절 100주년을 맞아 2019년 3월 17일 태극기와 독립운동가 얼굴과 공적이 적힌 판넬을 들고 행진하고 있는 안산 거주 고려인동포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사)동북아평화연대는 2월 27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연변 용정 3.13 연해주 3.17운동도 함께 기억하자’를 주제로 3.1운동 100주년 기념세미나를 개최했다. 중국동포사회는 또 ‘연변 용정 3.13운동도 함께 기억하자’ 주제로 성남과 가리봉동, 안산에서 특별강연회와 전시회를 개최했다. 고려인동포사회도 안산 선부동에서 태극기와 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판넬을 들고 거리행진을 가진 후에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3.17 독립선언 기념과 고려인독립운동 기념비건립 국민추진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해마다 3월 1일 삼일절 행사를 개최했는데, 작년(2023년)에는 필자도 참석했다. 3월 1일 오후 2시 월곡고려인문화관 앞 광장에 독립운동가 후손과 시민사회단체, 고려인마을 주민과 어린이합창단, 월곡동 주민들과 방문자들이 모여 ‘고려일보 창간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후 참석자들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홍범도공원에 도착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지역 인사들이 1919년 민족대표 33인이 발표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에, 고려인마을극단 ‘1937’과 호남대 미디어영상공연학과와 태권도경호학과 학생들이 준비한 ‘그날, 우리는’ 음악극 공연도 선보였다.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 리빅토르 회장에게 다음과 같이 권유했다. ①고려인주민회가 3.1운동 기념 축제를 개최한 것은 의의가 있다. 그러나 함께 사는 연수1동 지역주민들과 협력하는 것이 좋겠다. ②삼일절인 만큼, 한반도기뿐만 아니라 태극기를 준비하고 함박마을 거리를 행진한 후에 기념 축제를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 ③3.1만세운동은 한반도 전역과 해외동포사회에서도 전개되었다. 특히 연변 용정 3.13 만세운동과 러시아 연해주(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 3.17 만세운동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귀환 중국/고려인동포에 대한 지역주민의 이해도 높이고 중국/고려인동포 자신도 자랑스러운 한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사회는 1920년부터 매년 3월 1일 3.1절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와 관련 3.1만세운동 및 독립운동가 자료를 판넬로 제작해 장미근린공원을 시작으로 전국 고려인동포 거주지 등으로 확대 전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920년 3월 1일 3.1절 기념행사에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목조 독립문 <사진 박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