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합덕 고려인마을] “러시아어 능통 한국인 교사를 찾습니다”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충남 당진시 남부권역인 합덕읍과 우강면은 아산시 신창면과 이웃한 지역으로 고려인 등의 다문화 인구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지역이다. 특히 합덕읍에는 인근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공장이 많아지고 노동자를 위한 원룸촌이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중국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다가 2016~17년경부터 고려인동포가 늘어나 합덕 시내 원룸촌이 고려인마을이 되었다.
2019년 3월 당진 고려인동포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김학로 소장(당시 초록별교육협동조합 이사장)은 ‘고려인 자녀를 위한 돌봄교실’을 열었다. 그동안 장소를 옮겨 다니다가 마침내 2021년 2월 당진시 합덕읍에 문을 연 ‘도담도담공립지역아동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도담도담아동센터는 당진시의 공립아동복지시설 1호로 합덕지역의 고려인, 다문화, 맞벌이 가정, 취약계층의 돌봄이 필요한 아동에게 문화적, 교육적, 정서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지난 6월 20일 센터에서 김학로 소장, 변영인 센터장, 그리고 2019년에 만난, 당진시 가족문화센터에서 일하는, 고려인동포 박류다 통역사도 만났다. 당진 합덕 고려인의 든든한 도우미들이다.
김학로 소장 주선으로 대한고려인협회 당진 지부(지부장 김엘마르)도 생겼다. 또, 합덕의 고려인들도 한식명절 행사를 치르고 있다. 2022년 행사에는 한광호 당진시장도 참석했다. 고려인들이 ‘조상의 날’로 지켜온 4월 5일 한식은 소련 시기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도 고려인을 고려인답게 해준 ‘민족’ 명절이었다. 한국에서 한식 행사는 2016년 안산시 선부동 고려인마을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귀환 고려인동포가 지역공동체마다 한식 행사를 치르는 것을 한국사회도 존중해주고 협력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곳에도 러시아어 능통 한국인 교사 절실
고려인이 많이 사는 합덕의 초등학교마다 고려인 아동을 위한 이중언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합덕의 남쪽, 가톨릭교의 신리성지 근처 신촌초등학교를 찾았다. 신촌초등학교는 인구감소지역인 고덕면(예산군)이 지척인 농촌학교다. 한국 학생보다 고려인 등 외국인 학생이 더 많다. 25명 중 한국 학생 6명, 외국인 학생 19명, 유치부 한국 2명 외국인 6명 등이다.
신촌초교의 고려인 아동들은 러시아어가 능통한 한국인 교사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작은 학교라 이점도 있다. 역사체험 수업도 많이 다니고 있다. 한국인 학생과 합동수업 후에 별도로 기초학력 등 수업도 진행한다.
합덕 시내가 아니라 농촌의 작은 학교를 어떻게 알았을까? 고려인 학부모들의 ‘선택’이 놀랍다. 고려인마을마다 고려인 학생이 너무 많아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대구시 달성군 논공읍의 경우, 북동초등학교에 고려인 학생이 많아지자 이웃 논공초등학교로 학생들을 나누며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당진 합덕에서는 자연스럽게 고려인 학생의 분산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역시 러시아어 소통이 원활한 한국인 교사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진 합덕에서 꿈꾸는 고려인 농촌공동체
김학로 소장은 평소 “소농이 살아야 한국 농촌에 희망이 있다”고 주장해온 분이다. 공장생활의 스트레스보다 차라리 농사를 짓고 싶다는 반게오르기 외 몇몇 고려인과 작년에 양파 농사를 시작했다. 아쉽게도 파종 시기를 놓쳐 절반이 얼었다. 고려인의 농사꿈은 미뤄지고, 김학로 소장 혼자 양파 농사를 지었다. 전업 농사로는 공장임금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당진 고려인의 농사 실험을 들으면서 경기도 시흥 정왕동에서 고려인 농업공동체를 준비하는 이알카지 목사의 주장과 구상이 생각났다.
“한국 내 고려인도 벌써 60~70대가 많아졌다. 공장일은 불가능하지만, 구소련 시절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지은 분들이 많다. 농지를 저렴하게 빌릴 수 있다면, 노인과 부녀자들이 모여 농사를 지으면서 도시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 주말에는 젊은 부모들이 내려와 공기 좋은 농촌에서 자녀들과 쉼의 시간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시흥 이알카지 목사와 당진 김학로 소장의 만남을 그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