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마을 안산 선부동①] “그곳에 또 가고 싶다”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스탈린 치하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의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첫 기차가 떠난 날은 ‘1937년 9월 9일’이다.
지난 6월 ‘칠순잔치’를 인천 연수동 고려인마을에서 가진 서울 용산고등학교 삼이회(三利會)는 그날에 맞춰 9월 모임을 귀환 고려인동포의 고향인 안산 선부동에서 갖기로 했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연기돼 10월 7일에 결국 성사됐지만.
일행은 이날 오전 10시 안산역에 모였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 1번 출구로 나와 큰길을 건너면 원곡동 다문화마을특구가 펼쳐진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원곡동은 전국에서 온 내국인 노동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 이래 저임금노동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져 한국인 노동자들이 떠나고, 외국인들이 들어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초기에는 ‘저렴한 집값’과 ‘편리한 교통여건’ 때문에 원곡동에 정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문화 인프라’ 때문에 원곡동에 모이게 되었다.
안산시가 2008년 2월 전국 최초로 원곡동에 문을 연 외국인주민센터(외국인주민지원본부로 개명)는 365일 연중무휴로 창업과 구직, 다문화 공동체사업, 생활 관련 상담을 하고 정보를 제공한다. 원곡동은 이제 한국의 다문화·국제화 마을의 대표가 되었다. 2009년 5월 다문화마을특구가 지정되고, 다문화음식거리, 다문화어울림공원(만남의 광장), 안산세계문화체험관 등이 만들어졌다.
서울 이태원보다 색다른 거리 모습을 보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먹고,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의 한국살이를 들을 수 있는 세 가지 이점(利點)이 풍부한 ‘한국 속의 작은 세계’다.
10월 7일 목요일 오전 10시 안산역에서 출발한 삼이회의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안산 여정을 따라가 보자.
‘코리안(한민족)이면서도 코리아(한국)에서 외국인’이었던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가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2007년 4월 도입된 방문취업제 이후다. 그동안 소외당해온 중국과 구소련동포에게 최장 5년간 자유로운 입국 및 취업이 허용되었다.
한국어를 상실한 고려인동포도 단순노동 일자리가 많은 반월/시화공단을 찾았다. 원곡동은 이미 중국동포와 동남아 등에서 들어온 이주민으로 만원이었다. 또, 월 30만원의 월세도 버거웠다. 그래서 고려인동포는 원곡동에서 큰길을 건너 땟골 선부2동으로 들어갔다. 월 20만원이면 원룸을 얻을 수 있었다. 2010년 무렵 땟골에 고려인마을이 형성되었다.
10월 7일 정오. 땟골 입구 고려인마을의 ‘사랑방’ 우갈록 카페. 석 제냐(카자흐스탄 출신, 1951년생), 이 에다(우즈베키스탄 출신, 1951년생), 리가이 타마라(우즈베키스탄 출신, 1954년생), 텐 타마라(러시아 출신, 1955년생) 등 네 분의 고려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려인지원단체 (사)너머 김영숙 사무처장이 코로나 상황으로 ‘너머 제비봉사단’ 고려인 중에 네 분을 참여하도록 한 거였다.
2021년 칠순을 맞은 삼이회 회원 5인(김종부, 백종한, 송재욱, 심윤수, 임영상)과 안산 아름다운교회 정철옥 목사(뉴욕 김명식 동문 대신 참석) 6인이 우갈록 카페에 들어섰다. 특별히 고려인동포 사회를 돕고 있는 정철옥 목사의 따뜻한 권면의 말씀과 기도로 삼이회 땟골 칠순행사가 시작되었다. 심윤수 반장이 작은 정성을 텐 타마라 회장께 드렸다. 네 분 고려인의 짧은 한국살이 이야기도 들었다.
고려인 참석자들이 준비한 생일케이크와 러시아어로 부른 생일축하 노래는 감동의 깜짝 이벤트였다. 고려인들이 즐겨먹는 잔치국수는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특별히 정성을 다해 만든 깔룹쯔(다진고기와 야채, 쌀이 들어간 양배추 만두)는 담백하면서도 맛이 일품이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 예다 할머니는 2011년부터 땟골에 살고 있다고 했다. 벌써 11년째 한국살이다. 2022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카지흐스탄 수교 30주년에 더 많은 삼이회 회원이 땟골을 다시 찾기로 했다. “고려인동포 어르신 여러분! 자녀, 손자녀들과 함께 이 땅에서 건강하고 편안하게 행복한 삶을 보내기 바랍니다.”
일행은 땟골을 떠나 선부1동 노아네러시아학원으로 옮겼다. 2015년 무렵부터 전국의 고려인마을에 중도입국 고려인 학생들이 크게 늘어났다. 방문취업비자(H-2)를 소지한 동포들도 자녀동반이 가능해진 것이다.
2014년 학생수가 적어 폐교를 생각했던 땟골 선일초등학교는 갑자기 늘어난 고려인 학생들로 러시아어 원어민 교사를 긴급 채용하고 마침내 2017년 국제혁신학교로 지정되었다. ‘방과후 한글교실’뿐만 아니라 정규과정 학급도 언어 수준에 따라 ‘다문화 특별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학교에 다니다가 부모를 따라 들어온 중도입국 고려인 학생의 한국학교 적응은 쉽지 않았다. 부모조차 한국어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 재외동포 4세대인 고려인 청소년은 만18세까지 동거(F-1) 비자로 부모와 함께 체류할 수 있었다. (다행히 2019년 재외동포법의 재개정으로 4세 이후의 동포도 ‘재외동포’로 인정되어 계속 한국체류가 가능해짐)
“우리가 한국에서 살고 싶지만, 아이들이 언제 다시 러시아로 돌아갈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러시아어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하다.”
2016년 6월 선부1동에서 고려인 중도입국 학생을 위한 러시아학교 ‘노아네러시아학원’이 시작된 배경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러시아에서와 똑같이 전일제로 수업하고 있다. 러시아 정규교과과정과 같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사 외에 전체 교사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교사를 역임한 바 있는 고려인과 러시아인 교사 출신이다.
한국에 있을 뿐이지 러시아교육기관이다. 9학년과 11학년에 러시아 자매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른 후 러시아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고려인 학생들의 한국생활, 문화적응을 돕기 위해 ‘다문화소년문화클럽 방주’도 설립되었다. 근래 고려인 학생들 가운데 한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부모와 함께 살기 위해 한국대학 진학이 늘어나고 있다. 마침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아시아발전재단에서 지원하는 11학년 이 율리아 장학생도 만났다. 고려인 학생들이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글로벌 인재로 자라날 그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