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新쾌도난마] 도서관 도장 깨기, 다산 도장 깨기
지난 9월부터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강동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도장 깨기’에 나서고 있다. 도장 깨기의 대상은 동서양의 철학자 군상이다. 공자로부터 위르겐 하버마스까지 동서양을 호령한, 또는 하고 있는 철학자 1백여 명에 대한 심층 분석을 통해 철학에 관한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또 본받을 만한 철학자를 반추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첫 상대는 정약용이었다. 두 달 내내 정약용에 관한 다양한 책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우선 집 서가에 있는 정약용 관련 저서부터 챙겨 봤다. 의외로 세 권밖에 되지 않았다. 그 유명한 <목민심서>, <흠흠신서> 역해편, 그리고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 정도였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인근 도서관 도장 깨기였다. 서울 강동구에는 강일, 둔촌, 성내, 암사, 천호, 해공 등 구립도서관이 6곳 있다. 각각 7만~9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한 소형 도서관이다. 그밖에 서울시교육청 산하 강동도서관과 고덕평생학습관이 있는데, 이곳은 각각 20만 권 가까운 장서를 보유한 중형 도서관이다.
그중 거리가 가까운 강일, 암사, 해공도서관을 집중 공략하기로 했다. 이곳은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용이하다. 무엇보다 일주일 내내 이용이 가능하다. 도서관마다 휴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도서관 순방을 통한 ‘다산 도장 깨기’다.
우선 10여 권의 저술을 각 도서관을 돌며 대출해(대출기간 2주) 번갈아 집에 쌓아놓았다. 대출 도서는 다양했다. 강일도서관에서 대출한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암사도서관에서 대출한 <다산을 탐探하다, 다산을 탐貪하다>, 해공도서관에서 대출한 <다산의 마지막 공부>, <다산의 마지막 습관>, <다산의 마지막 질문> 등이었다.
다음, 집에서 멀지 않은 남양주의 다산유적지에 가서 그의 출생→출세→귀양→귀향→타계의 과정을 들여다봤다. 그래도 뭔가 부족해 <여유당전서를 독(讀)함>을 교보문고 천호점에서 구매해 총체적인 다산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곤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됐다.
다산은 생전에 대표적 치리지침서인 <목민심서>를 비롯해, 수사지침서 <흠흠심서>와 의서 <마과회통> 등을 남기는 외에 경집 232권, 문집 267권 등 499권의 거질(巨帙)을 남긴 저술 거장인 동시에 거중기 등의 건축기구를 만든 과학자이기도 했다. 한편으론 서학으로 불리던 천주교에 입문했다, 처형이 두려워 발을 뺀 ‘인간적인 비겁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도서관 도장 깨기를 하면서 안 재밌는 사실 하나. 다른 자치구에서도 일부 시행하고 있지만, 동네 작은 서점을 대상으로 구립 도서관 인터넷으로 보고 싶은 서적을 신청하면 읽고 나서 그냥 반납해도 되는 제도가 있다. 이름 하여 ‘동네서점 바로대출’이다. 그것은 자기가 읽고 싶은 신간(출간 5년 이내, 정가 5만원 이하)을 동네서점 다섯 곳 중 한 곳을 택해 신청하면 구입이 되는 대로 즉시 연락이 온다. 신청자는 책을 읽고 구매를 할 경우 1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고, 그럴 의사가 없다면 서점에 반납하면 끝이다.
그러면 서점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로 구독자가 대출을 요청한 책자가 구입되는 즉시 책자 가격의 10%를 받게 되고, 책자는 독자가 구입하지 않을 경우 도서관이 구입해주기 때문에 모두에게 윈-윈인 제도다. 이 얼마나 재밌고도 유익한 제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