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시선] 어떤 노후(老後)…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고명진 관장의 하루
고교 동기이자 언론계 동료인 친구가 있다. 모태신앙으로 평소에도 인간성 최고이나 더욱 좋은 때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을 때. 그냥 뭔가 퍼주고 싶어 스스로 억제력을 잃고 덤벙댈 정도다.
이번에도 그랬다. 일간지 사진부장 및 편집부국장을 지낸 뒤, 통신사 사진담당 임원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후 강원 영월에서 미디어기자박물관을 운영하면서 그 바닥을 휩쓸고 다닌다는 친구를 만난 건 그제(13일) 저녁, 곱게 차려입은 한복 같은 모습의 영월역 대합실에서였다.
우린 무슨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양 서로 얼싸안고 몇 번씩을 들썩이고 난 후에야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만남의 정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은 실로 10년 만의 해후였기 때문이었다.
저녁엔 다른 고교동기의 비워둔 아파트에서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 시간 나는 그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아야 했다. “왜 그렇게 사냐?”, “아까운 이력을 그냥 썩힐 거냐?”, “이대로 살다 죽으려 하는 거냐?” 등등 폐부를 찌르는 어투로 계속 공격해 왔다.
궁색한 변명밖에 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의 공박을 진지하게 청취하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었다. 내일 자기와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어떻게 노후를 보내야 하는지를 지켜보라고 했다.
이튿날 우리 정말 발에 땀이 나도록 바쁜 하루를 보냈다. 우선 영월의 한우 브랜드인 ‘다하누’ 거리에 가서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향한 곳은 정선에 있는 화동초등학교. 이곳 6학년 어린이들의 졸업앨범 제작을 위한 사진을 찍기위해서였다. 유튜버가 소원인 박찬영군, 배드민턴 선수를 꿈꾸는 이성원군, 심리상담가가 꿈인 전하수양 등 세 명의 졸업예정 어린이는 사진기자 할아버지의 주문대로 갖가지 포즈를 취했다.
친구는 이번이 세 번째 화동초교 방문이라고 했다. 첫 번째는 학교 전경을 드론으로 찍었고, 두 번째는 이들의 일상을,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 같은 졸업 앨범 만들어 주기를 영월, 평창, 정선, 태백, 횡성 등 인근 군 지역 10개교를 대상으로 해 오고 있단다.
정부도 그의 이 같은 재능기부를 높이 사 2022년 ‘제7회 농촌재능 나눔봉사 대상(대통령 표창)’으로 화답했다.
이동하면서 짬짬이 만추의 가을 풍경을 스마트 폰에 담는 것도 그의 못 말리는 일과 중 하나다. 정선에서 스시로 점심을 때우고 향한 곳은 다시 영월 읍내 다운타운. 문학 동아리를 엮고 싶어 하는 지방 대학의 강사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고는 잠시 미디어박물관을 점검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가 하루 일과 중 가장 공을 들이는 작업을 위해서다. ‘영월 IN’이라는 인터넷신문에 기사를 올리는 것인데, 주요내용은 강원도정 및 강원도의회 의정, 영월군정 및 영월군의회 의정 등이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 동정, 영월군의 문화 예술 활동 등이 추가된다.
한 시간여 작업이 끝나고 우리는 마침 열린 5일장을 돌아 봤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 영화 <글레디에이터 II>까지 보는 만용(?)을 부린 후에야 헤어져 각자 일상으로 돌아갔다.
전쟁 같은 하루였다. 하지만 둘의 진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하루였으며, 무엇보다 그가 그 같은 우정에 기초하여 나의 노후를 그토록 걱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