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동현장 ‘구로공단’이 중국동포 터전 ‘가리봉동’으로 바뀐 사연 ‘담다’

한국외대 동포세계신문 합작품 ‘가리봉 사람들 이야기’ 출판

이용원 송순섭·식품점 조순희·식당 최정순·초두부 최미애씨

[아시아엔=편집국] 서울 남서쪽에 위치한 구로구 가리봉동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1990년 이전만 해도 전국에서 상경한 근로자들의 일터인 ‘구로공단’의 배후지였던 가리봉동은 1990년대 초반부터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온 중국동포들의 터전이 되어 갔다.

지난 4반세기 가리봉동의 변천과정에서 이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살고 있는 내국인과 중국동포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담은 <가리봉 사람 가리봉 이야기> 스토리텔링 북이 제작·발표됐다.

‘2018 가리봉도시재생 주민공모 선정사업’을 진행해온 ‘가리봉텔러2(한중문화학당)’ 사업팀은 가리봉동에서 살아온 송순섭 은혜이용원 사장과 중국식품점을 경영하는 조순희씨(이상 한국인), 최정순 훈춘압록강식당 사장, 최미애 해란강초두부 사장(이상 중국동포) 등 4명을 선정해 3개월간 구술작업을 했다. 마침내 지난달 말 ‘가리봉 사람 가리봉 이야기’ 스토리텔링북 1호를 낸 것이다.

가리봉텔러2(한중문화학당)는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대표, 곽동근 전 한국외대 강사(박사과정 수료), 가리봉 거주 귀화 중국동포 전귀순씨 등이 대표 제안자로, 임영상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 주동완 한국외대 지식콘텐츠학부 부교수(융복합콘텐츠연구센터 센터장), 림학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 회장(한국외대 박사과정), 정금령 홍익대 미대 강사(예술학과 박사수료) 등이 팀을 이뤄 수행해 왔다.

‘스토리텔링북’은 철두철미 자료조사를 통해 가리봉동의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가리봉동의 변천사를 감동적으로 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송순섭씨는 1983년부터 가리봉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해 왔다. 구로공단의 변화에 따라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바뀌고 이발소를 찾는 손님들도 달라졌다. 송씨는 은혜이용원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통해 가리봉동의 변화상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구로공단의 젊은 노동자에서 중국동포, 그리고 요즘엔 한족 중국인으로 손님이 바뀌어 왔지만 송순섭씨는 한국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말 그대로 ‘은혜로운’ 은혜이용원으로 손님들을 이끌어왔다. 이용원 입구에서부터 벽에 걸려 있는 각종 상장, 신문·방송 출연 사진들이 정겹게 보이면서 가리봉동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가리봉동 우마길(연변거리) 중심에 위치한 중국식품점을 1998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한국인 조순희씨는 남편이 건설현장에서 만나 알게 된 중국동포를 호형호제하면서 중국 흑룡강성을 여행한 게 계기가 되어 1997년 한국에서 최초로 가리봉동에 건두부공장을 세웠다. 조순희씨 부부가 객지에 나와 일하는 중국동포들에게 고향의 먹거리를 제공해 준 이야기를 듣노라면 어느새 울컥하게 된다. 중국식품점 사장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가리봉 사람들조차 자신을 중국동포로 알고 대해 왔다는 조순희씨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이를 반영하여 스토리북에는 ‘중국동포인 듯 중국동포 아닌 중국동포 같은 조순희’라는 타이틀로 소개돼 있다.

‘가리봉동 소고기국밥’ 타이틀이 붙은 훈춘(압록강)식당 최정순씨는 1952년생으로 훈춘 조선족 농촌마을의 가족이야기와 북한과 러시아를 넘나들며 보따리 장사를 하다가 2005년 한국인 브로커에게 2천만원을 주고 비자를 받아 마침내 한국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 그는 가리봉동에서 훈춘 고향에서 먹던 ‘소고기국밥’으로 돈을 벌어 아들 대학교육도 시키고 안정된 생활을 하며 귀환 동포로 ‘가리봉 주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또 그의 아들도 바로 옆에서 대흥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해란강초두부의 최미애씨 역시 1961년 훈춘에서 태어나 세 살때 연변의 충청도 마을인 정암촌에서 20년, 또 해란강이 흐르는 용정에서 결혼하고 살다가 1998년 한국인 브로커에게 인민페 5만원을 주고 비자를 받아 한국에 왔다. 중국에서도 바느질과 연길서시장에서 초두부 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또 어린 아이를 떼어두고 홀로 북한과 러시아, 홍콩까지 다니면서 장사도 해보았다. 사춘기 딸이 방황하자 5년 만에 중국에 들어간 후, 한국을 왕래하면서 마침내 한국에 온지 10년 만인 2008년에 최씨는 해란강초두부 식당을 열어 가리봉동에서 꿈을 이루어냈다.

스토리북은 당시 사진과 자세한 설명을 달아 최대한 사실적으로 기술하였다. 중국동포 최정순씨와 최미애씨 이야기 뒤에는 특별히 자녀들이 ‘내가 본 우리 엄마’를 주제로 글을 썼는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울컥한 자녀들이나 글을 본 어머니들도 감동으로 옛 일을 회상하게 했다.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지역인사들과 함께 가리봉동이 지난 10년 이상 뉴타운사업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낙후되고 범죄의 소굴로 인식된 게토가 아니라 한국의 산업화와 귀환 중국동포의 생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다문화 서울의 한 명소(명소)로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가리봉 사람들이 살아온 치열한 삶과 그 현장을 스토리텔링 하는 자체가 최고의 가리봉 문화콘텐츠 개발”이라며 “책에 등장하는 분들 외에 가리봉 주민 모두 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한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삶을 살아온 분들”이라고 했다.

1985년 미국에 유학 가 재미동포로 30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외대 지식콘텐츠학부 주동완 부교수는 “중국동포들의 생애 인터뷰를 하면서 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참으로 꿋꿋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생생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북 표제는 중국동포 서예가인 림학 한민족문화예술인협회 회장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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