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삼성 임원승진자에게 ‘채근담’을 권함
<채근담>(菜根譚)은 중국 명나라 때 유학자 홍자성(洪自誠)의 생활철학서로 독특한 처세훈을 담고 있다. 홍자성은 1600년대 전후 중국 명나라 신종대의 사람으로, 생몰연대가 확실하지 않아 경력이나 인물됨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다만 스스로 환초도인(還初道人)이라 불렀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채근담이란 제목은, 송나라 유학자 왕신민의 “사람이 항상 나무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가히 이루리라”란 말에서 인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사람이 초근목피로 연명한다 해도 매사 성심과 진실을 다하면,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홍자성의 채근담은 총 359장(전집 225장, 후집 134장)으로 된 짧은 어록으로 하나하나가 시적 표현이 넘치는데다 탁월한 대구(對句)는 멋스럽기 그지없다. 이야기 소재도 매우 풍부하고 내용 역시 삶의 구체적인 모습, 인간 심리와 세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저자의 사상이 유교를 바탕으로 불교와 도교의 진리를 융합하고 자신의 체험을 가미하고 있어서 대부분이 단문이지만 사람의 도리에 대해서 참으로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책은 섭세 편, 도심 편, 자연 편, 수성 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어느 누가 나무 잎사귀와 채소 뿌리를 씹으며 표주박의 물 한 모금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까? 어찌 달콤한 술과 기름진 고기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채근담’은 세상을 살아가는 선비의 몸가짐으로 채소의 뿌리라도 달게 먹을 수 있는 참을성과 기개를 강조한다.
이 책은 나아가 “천지를 흔들 만큼 공을 이루고자 한다면 마땅히 살얼음 위를 밟고 지나가듯 하라”고 가르친다. 품행에 조심성이 없거나 소홀하고 조급하게 움직인다면 낭패만 거듭될 뿐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세상을 경륜하는 처세술까지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벼슬자리에 나가서는 두 가지를 지키라고도 한다. “오로지 공정하면 현명함을 얻고, 청렴하면 위엄을 갖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선비들이 권력이나 탐하고 총애를 받으려 눈치만 살핀다면 감투를 쓴 거렁뱅이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
“사람들은 무엇이든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것이기보다는 우리 것으로, 그리고 또 우리 것이기보다는 내 것이기를 바란다. 나아가서는 내가 가진 것이 유일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기 위하여 소유하고 싶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이 얼마나 맹목적인 소유욕인가?”
“보라. 모든 강물이 흘러 마침내는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듯이 사람들은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 죽음이라는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소유한다는 것은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이 어느 한 사람만의 소유가 아니었을 때 그것은 살아 숨 쉬며 이 사람 혹은 저 사람과도 대화한다. 모든 자연을 보라.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산다.”
“하찮은 일에 집착하지 말라.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라. 그대를 스치고 떠나는 것들을 반기고 그대를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을 환영하라. 그리고 비워 두라. 언제 다시 그대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에게서 받은 은혜는 큰 것이라도 갚지 않으면서 남에 대한 원한은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보복한다. 또한 남의 악은 확실하지 않더라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무릇 큰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채근담을 읽기를 권한다. 그러면 국회청문회 뿐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흠 잡히지 않고 부끄러운 낙마(落馬)를 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