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직필] 권력내부에 무슨 ‘죄’가 있기에

[아시아엔=김덕권 칼럼니스트/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십상시(十常侍)’ 얘기가 온 나라를 매몰시키고 있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156~189) 때 조정을 장악했던 환관 10여명을 지칭하는 용어다. 영제는 십상시에 휘둘려 나랏일을 뒷전에 둔 채 거친 행동을 일삼아 제국을 쇠퇴시켜 결국 망하게 한 인물이다.

당시 십상시는 넓은 봉토를 소유하고 정치를 장악해 실질적인 권력을 휘둘렀으며 부모형제들도 높은 관직을 얻어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후한 189년 8월 25일 발생한 십상시의 난에서 2000여명의 환관이 죽으면서 동탁(?~192)이 정권을 잡게 된다. <후한서>에는 특히 그들의 곁에서 훈육된 영제는 십상시의 수장인 장양(張讓)을 아버지, 부수장인 조충(趙忠)을 어머니라 부르며 따랐다.

환관은 남자의 생식기능이 제거된 벼슬아치를 일컫는다. 중국의 환관은 음경과 고환이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사마천이 당했다고 하는 궁형이 아마도 이 상태가 아니었을까? 임금이 사는 집을 궁궐(宮闕)이라고 하듯이 궁(宮)은 인체의 임금 부위에 해당하는 생식기를 가리킨다. 따라서 궁합(宮合)은 생식기의 결합인 셈이다. 그런데 조선의 내시는 음경은 남아 있고 고환만 제거된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조선 내시는 가정도 꾸리는 게 허용되었다. 성생활은 어떻게 했을까? 인간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식을 낳는 일이다. 환관은 이처럼 중요한 생식기능을 거세한 대가로 벼슬을 얻었다. 그것도 구중궁궐 안에서 근무할 수 있는 특별한 벼슬이었다.

유럽에서는 궁궐 내부에 이처럼 거세된 남자를 근무하게 하는 제도가 없었던 것 같다. 기독교 영향으로 왕이라도 일부일처제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유럽 궁궐에는 수백명 또는 수천명의 여자 후궁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 환관은 수천명의 여자와 성관계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쟁취한 동양의 전제군주 제도에서 필요한 직책이었다는 얘기다.

환관제도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중국이고, 조선은 그 다음쯤 될 것이다. 밤이 되면 궁궐 내부는 왕을 빼고 거의 여자들만 있는 금남(禁男)의 공간으로 변한다. 그래서 밤에도 이곳에서 생활하는 남자들은 거세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환관은 본능적 욕구를 포기한 대신 벼슬이라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한 셈이다. 또한 돈과 권력 탐닉을 통해 성기능 상실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사를 훑어보면 환관과 외척이 양대 권력집단이었고, 이 두 집단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비선실세와 직계가족 등의 국정문란행위는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등 군사정권, YSㆍDJㆍMB 문민정권 아래서도 있었습니다. 왜 그런 폐단이 생겼을까? 왕권과 신권의 견제와 균형 대결에서 권력의 속성과 내시의 속성상 나오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군주는 신료의 득세와 발호 견제 차원에서 후환이 적은 ‘미천한 내시’를 이용했던 것이다. 둘은 권력은 베갯밑 공사(公事)처럼 가까운 사람에 실리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환관은 조석으로 가까이서 군주의 수발을 들므로 국정동향 정보는 물론 주군의 성생활까지 그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따라서 왕을 움직일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세계일보의 ‘십상시’ 보도가 현 정권을 뒤흔들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번 사건을 ‘정윤회게이트’라고 말한다. 그리고 철저한 수사와 함께 문제점을 파헤치겠다고 나서고 있다. 폭로된 정윤회 문건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감찰한 결과, 강원도에 거주하고 있는 정윤회씨는 매월 두 차례씩 서울에서 비선 실세로 불리는 삼인방과 그 외의 몇몇 사람들과 만나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이다.

정윤회씨와 비선 실세들은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교체설’이나 ‘중병설’ 등을 퍼트리도록 지시했다고 문건에는 나와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문건은 정보지(찌라시)에 떠도는 풍문, 풍설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런데 문제는 “찌라시를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문건이 ‘공공기록물’이고 그것을 유출했기 때문에 이 나라 최고 권부인 청와대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럼 현 정권에 십상시는 존재할까? 검찰은 문건을 유출했느냐 여부를 수사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문건 내용이 사실이냐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이번 폭로문건을 보면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측근들이 서로 견제하고 비난하고 루머를 확산하고 숙청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여인과 내시들이 구중궁궐에서 황제를 독차지하기 위한 암투와 같이 느껴진다. 마치 역사에 나온 ‘십상시’와 구중궁궐의 암투가 2014년 청와대에서 사극처럼 재연되고 있는 듯해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보면 황제가 무능했으며 그 주변 환관들이 권력을 뒤흔들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십상시’ 시대처럼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역사 속 일들이 재연되는 듯한 모습이다. 문제는 권력의 집중과 측근들끼리의 권력암투가 나라를 망치는 것이다.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갓 찌라시 수준의 루머로 나라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이렇게 온통 나라의 이목이 이 ‘십상시’에 쏠리는 이유는 아마도 권부 내부에 지은 죄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