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국제시장 시절, 그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필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 6.25전쟁을 겪었다. 그 후 1.4후퇴로 충북 진천의 시골마을로 피난을 갔다. 그 후 2년여 만에 피난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장충초등학교 6학년에 복학했다. 가뜩이나 머리도 둔한 필자가 다른 애들을 따라갈 재주가 없었다. 촌티는 흐르고 목욕도 제대로 못해 손등은 트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바로 그 처참한 시절 이야기다.
내 자리는 5분단 맨 구석의 창가에 있었다. 친구들로부터는 왕따를 당했고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주셨다. 외모는 점점 깨끗해지고 공부도 점점 열심히 따라잡아 수업시간에 당당히 손을 들어 선생님의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내 자리는 3분단 정 가운데로 옮겨졌고, 당시 국가고시도 잘 치러 목표하던 서울의 ‘배재학당’에 괜찮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덕분에 오늘날까지 실패한 인생을 살지는 않은 것 같다. 만약 그 초등학교 어렵던 시절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각별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던들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이따금 생각해 본다.
미국에서의 일이다. 톰슨이라는 초등학교 여교사가 있었다. 개학 날 담임을 맡은 5학년 반 아이들 앞에 선 그녀는 아이들에게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첫 줄에 구부정하니 앉아 있는 작은 남자 아이 테디가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톰슨 선생은 그 전부터 테디를 지켜보며 테디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옷도 단정치 못하며, 잘 씻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테디를 보면 기분이 불쾌할 때도 있었다. 끝내는 테디가 낸 시험지에 큰 X표시를 하고 위에 커다란 F자를 써넣는 것이 즐겁기까지 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 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의 지난 생활기록부를 다 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녀는 테디 것을 마지막으로 미뤄두었다. 그러다 테디의 생활기록부를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테디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잘 웃고 밝은 아이임. 일을 깔끔하게 잘 마무리하고 예절이 바름. 함께 있으면 즐거운 아이임.”
2학년 담임선생님 “반 친구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학생임. 어머니가 불치병을 앓고 있음. 가정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보임.” 3학년 담임선생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음고생을 많이 함. 최선을 다하지만 아버지가 별로 관심이 없음. 어떠한 조치가 없으면 곧 가정생활이 학교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임.”이라고 썼다.
테디의 4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내성적이고 학교에 관심이 없음. 친구가 많지 않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도 함.” 여기까지 읽은 톰슨 선생은 비로소 문제를 깨달았고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반 아이들이 화려한 종이와 예쁜 리본으로 포장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왔는데, 테디의 선물만 식료품 봉투의 두꺼운 갈색 종이로 어설프게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부끄러웠다.
선생은 애써 다른 선물을 제쳐두고 테디의 선물부터 포장을 뜯었다. 알이 몇 개 빠진 가짜 다이아몬드 팔찌와 사분의 일만 차 있는 향수병이 나오자, 아이들 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가 팔찌를 차면서 정말 예쁘다며 감탄하고, 향수를 손목에 조금 뿌리자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테디는 그날 방과 후에 남아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꼭 우리 엄마에게서 나던 향기가 났어요.” 그녀는 아이들이 돌아간 후 한 시간을 울었다. 바로 그날 그녀는 읽기, 쓰기, 국어, 산수 가르치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진정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톰슨 선생은 테디를 특별히 대했다. 테디에게 공부를 가르쳐줄 때면 테디의 눈빛이 살아나는 듯했다.
그녀가 격려하면 할수록 테디는 더 빨리 반응했다. 그 해 말이 되자 테디는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겠다는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가장 귀여워하는 학생이 되어 있었다. 1년 후 그녀는 교무실 문 아래에서 테디가 쓴 쪽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톰슨 선생이 자신의 “평생 최고의 교사였다”고 쓰여 있었다.
6년이 흘러 그녀는 테디에게서 또 편지를 받았다. 고교를 반 2등으로 졸업했다고 쓰여 있었고, 아직도 평생 최고의 선생님인 것은 변함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4년이 더 흘러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이번에는 대학졸업 후 공부를 더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쓰여 있었고 이번에도 그녀가 평생 최고의 선생님이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라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름이 조금 더 길어졌다. 편지에는 ‘Dr. 테디 스토다드 박사’라고 적혀 있었다. 그해 봄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다. 테디는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으며, 톰슨 선생님에게 신랑의 어머니가 앉는 자리에 앉아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기꺼이 좋다고 했다.
그녀는 가짜 다이아몬드가 몇 개 빠진 그 팔찌를 차고, 어머니와 함께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어머니가 뿌렸다는 그 향수를 뿌렸다. 이들이 서로 포옹하고 난 뒤 이제 어엿한 의사가 된 테디 스토다드는 톰슨 선생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선생님, 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리고 제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톰슨 선생님도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테디, 너는 완전히 잘못 알고 있구나. 내가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바로 너란다. 널 만나기전 까지는 가르치는 법을 전혀 몰랐거든.”
지금은 고인이 되셨겠지만 필자의 오늘을 있게 해주신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