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복음 그 자체로 충분하기에
고린도후서 10장
“바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지만, 직접 대할 때에는, 그는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고후 10:10, 새번역)
당시 헬라 지역 곳곳에서 소피스트들의 연설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바울에게 기대했던 것은 소피스트들을 능가하는 언변과 논리였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에게 짜릿한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는 명강연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막상 얼굴 보고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감동이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는 바울이 아테네의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처음에 바울에게 관심을 기울였던 것에 비하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의 한 가정에서 말씀을 나눌 때, 유두고라는 청년이 바울의 설교 중에 졸다가 추락사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탁월한 달변가였다면 피곤에 지쳐있는 사람의 귀도 쫑긋하게 했을텐데 바울이 그 정도는 아니었던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의 뛰어난 글솜씨 때문에 복음이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변변찮은 말주변 때문에 복음이 복음이 아니게 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힘이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전한 것이 단지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 말고 복음만 전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 사이에 다른 것을 끼워팔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가장 끼워팔기 쉬운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믿는 하나님을 얘기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을 믿는 나에 대해 얘기합니다. 자기 자랑을 하나님 주신 은혜라고 포장하고, 기도 부탁을 내세워 자기 필요를 채웁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간증을 잘 가려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만약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써서 복음이 복음이 된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며 왜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공부 많이 한 서기관들을 제자 삼지 않으셨을까요?
우리가 복음에 자꾸 무언가를 더한다는 것은 복음 그 자체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