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영적 체험의 절정에 올라서면
갈라디아서 5장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영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영적으로 민감하다’, ‘사람이 굉장히 영적이다’,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다’ 등과 같은 표현들에서 ‘영적’이라는 의미는 ‘일반적이지 않은’, ‘비범한’이라는 뜻을 너머 ‘신비한’, ‘초자연적인’, ‘인간의 영역이 아닌’이라는 의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아니, 영 그 자체입니다. 성령보다 더 영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 그 자체이신 성령의 활동에 있어 초절정은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5장 22, 23절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영적 현상에 대한 진술입니다.
사랑, 기쁨, 평안, 인내, 친절, 선함, 신실함, 온유, 절제가 바로 영적 열매입니다. 이것들이 치유나 축귀, 방언과 예언보다 더 신령한 영적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는 방언도 예언도 폐지될 예정이지만 사랑만은 영원하다고 했습니다(고전 13).
성령의 열매들을 보면 특별하게 종교적이거나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것들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흔하게 거론되는 보편적 가치들이기도 합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인격적 가치들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종교적 범주에만 가둘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사람으로 지으셨기에, 사람으로 지어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령사역 하는 것보다 인간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성령사역이 과연 성령에 의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참 신앙인이란 인간이 되는 것이지 신령한 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만큼 영적인 사람 없습니다. 강력한 귀신을 물리치는 것보다 내 안의 탐욕을 절제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더 대단한 영적 능력입니다. 누군가에게 친절과 선을 베푸는 것보다 더 큰 치유사역이 어디 있겠습니까? 각박해져가는 세상을 치유하는 사역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