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선천적 몸치 탈출하기
히브리서 9장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히 9:9-10)
운동을 배울 때 처음에는 동작을 구분해서 배웁니다. 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작을 구분해서 배웁니다. 악기를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각각의 프레이즈를 따로 연습합니다.
구분 동작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그 때는 따로 따로 연습하던 것들을 연결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고수는 뭘 해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끊김이 없고 부드럽습니다. 하수는 뭘 해도 어색합니다. 스윙이나 동작이 매끄럽지 못하고 로보트 같습니다.
사실 원래는 한 동작인데 초보자를 위해서 따로 구분시켜 놓은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의 스윙인데 초심자를 위해 백스윙과 임팩트와 팔로우스루를 구분해 놓은 것입니다. 원래 한 곡인데 연습을 위해 프레이즈를 나눈 것뿐입니다.
모든 율법은 원래 하나였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 13:10) 사랑이라는 완전체를 분리하고 구분해서 설명해 놓은 것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악기나 운동으로 치면 구분동작과 같은 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이란 구분동작이 전부인 줄 알고 하루 종일 분리해서만 생각하고 구분하고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선민과 이방인을 구분하고, 평일과 안식일을 구분하고, 성지와 일상의 자리를 구분하고, 제사장과 평민을 구분하고,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합니다.
공간을 분리하고 시간을 분리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공간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예배와 삶도 분리됩니다. 겉과 속이 달라집니다. 가정 따로, 교회 따로, 직장생활 따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휘장을 찢으시며 성소와 지성소를 연결하셨습니다. 제사를 종결시키며 삶과 예배를 연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배와 삶과 일상이, 사람의 앞과 뒤가, 말과 행동이, 지식과 믿음이 연결된다는 의미입니다.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해서 멋진 연결 동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천적 몸치, 즉 죄인이기 때문에 천만 번을 반복 연습해도 안됩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가능해집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거듭나야 소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