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박상설 ‘아시아엔’ 전문기자 1주기에 다시 펼치다

90세 넘은 연세에도 겨울철 산행을 멈추지 않은 생전의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12월 23일은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박상설 전문기자가 하늘의 별이 된 지 1년 되는 날입니다. 박 전문기자는 80대 중반이던 2012년초부터 별세 직전까지 10년간 아시아엔 독자들에게 한평생 직접 경험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진솔하게 글로 엮어냈습니다. <아시아엔>은 그가 2014년 출판한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머리글을 공유하며 박상설 전문기자의 1주기를 기억하려 합니다.<편집자>

모두가 바라는 ‘행복’, ‘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책을 준비하는 동안 이 물음 하나가 가슴을 쳤다. 나는 아마도 이 문제를 독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나보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 틀을 깨고 몸을 굴려 야지에 살아남아 오늘도 자연에 논다. 생계를 위시해 일상의 모든 일을 호미질하며 김매듯 살아낸다.

내 주적은 나

내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전의 삶이다. 그 주적(主敵)은 나다. 구속이 자유라고 믿고 고통 뒤에 즐거움이 온다는 이 행동 원칙은 젊은 날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숙엄한 자연에서 나를 혹사하며 깨우쳤다. 인생의 허무나 좌절, 갈등, 번민 따위를 걷어치웠다. 순간을 살아내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마치 자연처럼!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고 살아낼 수밖에 없다. 생계를 위한 무기는 오직 부지런함뿐이다. 나는 스물네 살부터 부모와 여동생 일곱을 먹여 살리고, 곧이어 내 식구도 네 명이나 생겨 서른 살에는 열한 명의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되었다. 그것도 6·25 전화(戰禍)와 보릿고개의 처참한 시절의 이야기다. 초급장교 복무, 건설부 근무, 퇴근 후 대학 재수생을 가르치는 학원강사와 가정교사, 부업용 집 장사 등을 죽기 살기로 해냈다. 내가 벌지 않으면 가족이 죽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가족이 나를 사람 되게 했다.

산은 내 피난처였다

그럼에도 때때로 생지옥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 피난처가 산이었다. 그 이후로 숲과 산이 고향이 되었다. 나는 세상의 허무와 무상을 보아버린 허망함을 산길에 묻으며 연민의 자국을 지워나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틈을 만들어 만사를 제치고 속세를 떠나 저 멀리 자연을 껴안고 삶의 고뇌를 삭혔다. 그것만이 만신창이로 살아온 나를 위로했다.

나는 인간 공장쪽보다 자연생태계에 신경 쓴다. 제로 스트레스의 숲에서 노닌다. 오직 자연을 사랑할 뿐, 사람을 사랑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진실이며, 진실이 아름다움이다. 허나 아름다움이 진실보다 우위에 있다. 나와 자연과 문예정신이 한 몸이 되면 바로 거기에 즐거움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순수 무궁한 정서를 인문정신으로 살아내는 행동의 기쁨을 추구한다. 가슴 조이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오묘한 것들을 흠모하는 삶을 좇는다. 이 근원적 원리를 삶의 교서(敎書)로 삼고, 그 기쁨의 복을 여러 사람과 행동으로 공유하고 싶다.

1987년 6월20일 덕유산 정상을 오를 당시 박상설 전문기자

결핍이 나를 다스리는 채찍이고 채근이었다

돈이 먼저냐 즐거움이 먼저냐, 이것이 고민될 때도 있다. 일의 보람을 느끼며 돈을 벌어 절제된 소박한 삶으로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것, 이 판가름은 철학과 문화 수준의 안목 차이로 결정된다. 삶의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이고 욕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생활 형편이 어렵더라도 정신세계를 가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 결핍이 나를 다스리는 채찍이고 채근이다.

이렇게 하면 삶의 고통은 줄어들고 삶의 품격은 높아진다. 가장 진리에 가깝고 독자적이고 유연하며 막강한 엔트로피(entropy)적 세계관으로 살 일이다. 시간은 화살이다. 인생은 불가역(不可逆)이며, 돌이킬 수 없는 숙명에 갇혀 산다. 사변적 말꼬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살 일이다. 홀로 존재하는 절대적으로 순수한 색은 없다. 자연의 색을 음미하며 나라는 일인칭을 버리고 내가 자연이다.

사람들은 못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에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고 믿는다. 그 선이란 것이 재화(財貨)다. 재화는 중요하다. 하지만 재화는 마음대로 좌지우지 못한다. 잘 산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명제이기 때문에 나는 삶의 틈새마다 ‘자연 풍의 놀이’를 슬쩍 끼워 넣어 노는 듯 일하고 일하는 듯 논다. 아흔이 가까운 나이지만 하고 싶은 것 여한 없이 다 하며 공고히 살아내고 있다. 내게는 자연이 직장이다. 죽는 날까지 자연으로 출근하고 걷다가 쓰러질 것이다. 늘 숲을 동경하며 그렇게 하나 될 것이다.

자연이란 ‘원시’를 일컫는 말이다. 나는 가능한 한 원시 상태를 끼고 산다. 자연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고달픈 세상살이도 한결 낫게 보인다. 자연에 놀다보니 심플 라이프(Simple Life)의 무임승차 노인이 됐다. 나는 일상을 레저 놀이로 꾸며 마냥 자연에 뒹군다. 자연은 그냥 흘러간다. 그대로 버려둔다. 그대로 좋다. 덩달아 내가 좋다.

자연에는 근심걱정 따위가 없다

시집 한 권 들고 숲에 들자. 주중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야영하고 농사일하고 산에 가고 여행하자. 이것이 자연을 모태로 삼은 레저문화다. 감성과 호기심을 유발하고 땀 흘려 일하고 땅에 뒹굴어 건강을 다지며 마음을 넉넉히 하는 평화로운 삶이다. 깊은 숲에서 보들레르의 시편에 몸을 떨며 스스로 아름다워지는 앤솔로지의 기쁨, 무엇으로 이 감동을 사랴!

여한 없다! 근심걱정 따위는 자연에는 없다. 허나 나는 고뇌한다. 사유하는 고뇌의 고통은 얼마나 멋진 게임인가! 레저 놀이는 삶의 근본인 행복 프로젝트다. 서재를 박차고 숲을 두리번거리며 뭔가에 젖어 독백한다. 밤에는 사력을 다해 글을 쓴다. 레저 놀이는 글로 완성된다. 나의 글은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잊은 채 몸을 펜대 삼아 흙에 흔적을 남기는 처절한 기록이다. 위트와 재주 넘치는 찬란한 글은 모른다.
세련된 레저 놀이 훈련으로 세계화를 향한 가정 경쟁력을 키운다. 다양한 새로운 레저 놀이 기술을 배우고 흥미진진한 모험 서바이벌로 단련한다. 각종 레저 장비의 취급 사용에 통달한다. 그리하여 숲으로 산으로 바다로 쇼핑 간다. 주말에 땀 흘려 밭을 가꾸고 텃밭에 무릎 꿇고 절하며 고마움을 느낀다. 아름다운 영혼과 향기로 가득하다. 내 생애는 오늘을 위한 모든 날이었다.

나는 주말레저농원을 47년이나 이어오며 국내외 오지를 피와 땀으로 탐험해왔다. 그 전쟁터 이야기를 글재주도 없으면서 ‘나침반’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써서 캠프나비 동호인들과 나누어왔다. 그런데 그 글이 사람들 사이에 흘러 다니며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이런 인연으로 글이 점차 퍼져나가면서 강의 요청도 들어오고 ‘나침반’을 교재로 한 현장체험 워크숍도 열게 되었다. 신문사와 방송매체에서 인터뷰와 출연 요청도 쇄도하여 깐돌이 노인은 때 아닌 외도로 경악했다. <아시아엔>(THEAsiaN)에서 ‘박상설의 자연 속으로’라는 칼럼을 연재하게 되었다.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가 모두를 행복의 대열로 이끌길

이런 흐름이 결국 이 책으로 이어진 것인가. 올 3월에 갑자기 면담을 신청하는 메일 한 통이 날아왔다. 2년 넘게 내 칼럼을 애독해왔다며 토네이도 출판사의 김지혜 기획실장이 책 출간을 제의해왔다. 전부터 몇몇 출판사와 지인들로부터 책 출간을 권고받은 터였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숙제로 묵혀두고 있었다. 그를 직접 만나보니 출간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박상설의 자연 이야기에 오랫동안 몰두하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마음을 전하는 흐름이 바로 자연이었다.

나는 그날 바로 그에게 출간을 허락하고 원고를 모두 넘겼다. 내게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토네이도에서 펴내는 이 책이 그야말로 돌풍이 되어 국민 모두를 행복의 대열로 빨려들게 하고 삶을 이완시켜 여백의 행복을 맛보게 되기를 바라며!

2014년 9월

샘골 숲에서 박상설

강원도 홍천 오대산 600고지 샘골, 아시아엔 창간 4주년(2015년) 금강송 기념수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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