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살 박상설의 내멋대로①] “에라 모르겠다, 자연에 맡겨 놀자”

박상설 전문기자가 캠핑 텐트를 쳐놓고 독서를 하고 있다.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나의 영토는 경계가 없다. 그러나 밤이면 랜턴의 불빛이 미치는데까지가 나의 영역이다. 이 작은 세상을 어둠이 감싸준다. 좁은 한 평의 캠프는 자유의 크렘린, 요새다. 몽상의 세계와 독대하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커닝하는 곳이다.

노병은 세상의 하잘 것 없는 제설분분(諸說紛紛)을 백안시한다. ‘에라 모르겠다, 자연에 맡겨 놀자. 이제 됐다! 교과서에 없는 짓만 골라서 밀고나가자.’ 세상은 사변적인 말이나 문장의 기교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 땀과 눈물로 빚어낸 실존의 공간이다.

성취는 생각이 아니라 지체 없는 행동이며 미완의 길이다. 자신의 몸을 던져 실수를 당연시하는 모험의 실험장이다. 실패를 거듭하며 ‘젠장’을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인생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운명의 연속이다. 그 운명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의 죗값이다.

실수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자연은 실수가 없다. 무욕질서(無慾秩序)의 시스템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이어주는 아웃도어 생활을 들여다보자. 행동하는 취향 문화를 삶의 실험이라 여기자. 삶의 모든 근본은 원시생활 속에 담겨져 있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인간은 선하다.

야외 생활은 야생에 묻혀 마음이 넉넉해지는 여장(旅裝)이라고나 할까. 그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바로 그것이 평화의 매력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바꿔나가는 것이 일상이다. 캠핑은 열정적인 소꿉놀이다. 삶의 신념을 심어주는 묘약은 아웃도어의 행위 문화에 있다.

자연은 여간해서 그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행간의 뜻을 사람이 건져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환경과 있는 그대로의 형편으로 자신과 만나라. 자연에 뒹굴며 낭만을 통해 복잡한 세상을 단순화하라. 불가능에 도전하는 고매한 정신이 자연을 흠모한다.

속물 세상에는 자연이 살지 않는다. 나는 농사하며 땀방울을 응시하는 습관을 배웠다. 일과 놀이를 결합해 여행에 끼워 자연을 쇼핑한다. 야생에 버려져 몸과 마음이 갈구하는 대로 살다 간다. 인생의 9부 능선을 지나고 있는 나는 혼자 산다. 윤리와 도덕 관습에 저항한다. 내가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자식들에게 효도한다. 나의 티끌만한 고통도 가족에게 짐 지우지 않는다.

나는 실수를 저지르며 그 실수를 실험한다. 실험은 이기심의 세련화와 삶의 합리화다. 그것을 행동으로 실험한다. 나는 환자로 죽지 않고 여행자로 죽을 것이다. 그 사막의 섬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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