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꽃, 나무, 새가 주는 교훈


오늘의 병든 물질문명을 생각하며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행동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 하나가 산과 그 언저리에 사는 생태계에 눈을 뜨는 것이라는 걸?알았다. 산에 들어 잘 살펴보고 귀 기울이고 냄새 쫓으면 늘 새 소식이 온다. 모든 것이 새롭고 처음 보는 것처럼 아기 눈이 된다.

매번 새로운 꽃 새로운 풀잎 새로운 나무를 만나게 된다. 하도 많은 식물들이라서 여러 번 만난 사이인데도 이름을 도무지 알 수 없어 애를 먹기 일쑤다. 가끔은 식물도감을 뒤져 새 친구를 얻는다. 우리 일행 중에 이우영 장군은 산에 들면 모든 나물 약초에 조예가 깊고 웬만한 나무의 이름도 아는 척척 박사다. 나는 늘 생각한다. 그래야만 하는데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심성이 올곧아야 된다는 것을 늘 그를 통해 깨우친다.

그러나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우리 삶과 어떤 형태로든 연관돼 있는 자연이 가르치는 길을 거역할 수는 없다. 나는 앞으로 불과 4번의 생강나무 꽃 향을 맡으면 90세가 된다. 나의 욕심은 90세는 채워야 하는데 하고 어제도 오늘도 늘 산에 있다.

해맑은 새소리에 상념 잊고?

산골짝은 새소리로 생기가 넘친다. 새는 쉴 새 없이 짖어대며 짝을 찾아 둥지를 튼다. 새 소리만 들릴 뿐 여간해서 눈에 띠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는다. 단순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는 새가 있는가하면 현란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새도 있다. 그 중에서도 끊일 듯 이어질듯 애처롭게 이어지는 가냘픈 소리에 심금을 울린다.

새는 나뭇가지나 잎을 물어다 둥지를 튼다. 높은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짓지만 그래도 폭풍우에 견디어낸다. 새는 행복하다. 자유롭게 날고 마음대로 먹이를 낚는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일 해야 하고 그것도 일거리가 없어 백수로 헤매야 하니, 저 새들은 놀듯 살면서도 돈이나 밥, 자식 공부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겠는가! 산에 들어 가끔 이렇게 부질없는 푸념도 해본다. 새는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동물이나 식물을 보면 금세 마음이 밝아지고 저절로 즐거워진다. 특히 개와 자유를 얻은 모든 동물, 즉 새나 곤충 같은 것, 그리고 수목을 봤을 때 그렇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인간을 보면 거의 언제나 으레 혐오를 느낀다. 왜냐하면 약간의 예외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다 가장 서투른 그리고 가장 흠이 많은 실패작··· 추한 육신과 천한 욕정과 속된 야망, 온갖 어리석음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는 외모와 부자연스럽고 타락한 생활에서 오는 천박하고 횡포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자연의 품에서 동식물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은 그가 만년에 자신의 철학의 정수를 요약한 에세이집 소품이다. 삶의 괴로움·삶의 허무·생존의지·죽음 등을 사유하며, 인생의 생애는 평탄하고 즐거운 길이 아니고 가는 곳마다 장애물이 놓인 험한 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그도 ‘루소’처럼 자연 귀의(歸依)의 삶을 설파했다.

박새 한 마리가 서울 시내 한 공원 노간주나무 이파리 끝에 거꾸로 매달려 먹이를 먹다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생명의 끈 ‘푸른 보석’ 나무

쑥스럽지만 이쯤에서 털어 놓을 이야기가 있다. 나는 평생을 산에 가는 사람이며 아무데서나 잠자리를 마련해 뒹구는 캠퍼이다. 그래 일찍이 산을 알게 되었다. 산을 이용만 한다는 것은 진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안하고 성의에 차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산에 빠질 수밖에 없는 더 큰 멋진 방법은 없을까? 하고 호강에 겨운 고민을 했다. 40세 때 나는 건설부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부업으로 집을 지어 파는 집장사를 하였다. 몇 년 전부터 하던 사업이 번창해 마침내 목돈이 마련돼 가평북면 도대리 명지산 동쪽일대의 임야 30만평을 매입하였다.

임야를 사들이자마자 투자가치는 없지만 과감하게 1967년부터 3년간 잣나무와 낙엽송 20만 그루를 심고 밤나무 5000그루를 심었다. (임야는 굴곡과 경사가 심하여 지적상 1평이면 실 표면적은 1.5~2평이 된다.)

그 후도 수년간 몇 군데 산에 나무를 심어 나갔다. 가을 산행 중 때로는 야생화 씨를 받아 다음해, 여기저기에 뿌려 새싹이 돋아나는 재미를 보기 위해 산을 찾는 습성이 나에게는 있다.

내가 심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면서 무상의 큰 보람을 느낀다. 나와 산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메마른 흙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다. 저 나무들이 밤낮 없이 산소를 뿜어내 탄산가스를 정화 시키는 생명의 끈 ‘푸른 보석’을 대단하게 여긴다. 나는 산에 들 때마다 나무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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