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문화자본 취향, ‘일상 습관’이 결정

필자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가 서해 바다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손엔 늘 책이 들려있었다. 


부르디외 전문가 찾아가 ‘문화’ 궁금증 해소

나는 늘 ‘문화’라는 말을 서슴없이 써오면서도, 그 뜻의 본질을 왜곡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문화란 무엇인가, 나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사람의 ‘취향, 취미, 습관’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서 왔고, 삶의 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늘 궁금하게 여겨오다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라는 사회학자의 학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홍성민 교수가 ‘부르디외’ 교수의 학문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보를 얻자마자, 바로 교보문고에 가서 홍성민 교수의 저서 ‘문화와 아비투스’,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의 두 권의 책을 구입하고, 대충 훑어보니 ‘차별화된 진보적 문화’에 대한 연구논문 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인 사회문화 학문을 통해, 일상의 나의 문화생활에 대한 검증을 받으려고 그 길로 무턱대고 홍성민 교수를 찾아나서, 어렵사리 직접 만나 장시간의 의견을 나누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열정을 홍 교수가 양해하고 자신의 저서인 ‘문화 정치학 서설’이란 두꺼운 책까지 선물로 주었습니다. 학교 제도권에 있지 않은 나는, 이런 도발적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내가 추진하는 일과 그 일을 뒷받침 하는 이론적 근거에 대해, 검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지성을 구걸’하기 위해 체면을 무릅쓰고, 거리로 뛰쳐나가 애걸하는 경솔한 노옹(老翁)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부르디외 교수는 20세기의 행동하는 진보적 지식인 사회학자로서 그가 주창한 대표적인 학설은 바로 ’아비투스(Habitus)’입니다.

‘아비투스’란, 개인의 문화적인 소비의 성향(취미, 선호)을 말합니다. 이 성향은 개인의 사회적인 지위, 교육의 수준, 사회 계층, 가정에서 자라온 배경 등에 따라 각기 다르게 각 개인 안에 내면화된 사회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비투스’란 각기 다른 생활취향의 환경에 따라 생성된, 개인 안에 내재된 사회계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습관화된 취향에 따라 편리한대로 문화소비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것이 상류층 문화와 하류층문화를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상류층 문화와 하류층 대중문화를 구분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다툼은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부의 대물림도 문화자본이 결정지어

‘부르디외’ 교수는 ‘문화자본’의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계급을 다음과 같이 구분지어 설명합니다.

△경제활동의 기본요소인 ‘경제자본(Economic capital)’ △사회적 연대의 줄을 의미하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취향(taste) 등을 뜻하는 ‘문화자본 (Cultural capital)’ △인성과 인간미를 나타내는 ‘인간자본(human capital)’

인간사회에는 인간들이 남들보다 자기가 우월하게 보일 수 있게 하려는 차별화 본성으로 인해, 계급구조가 생겼습니다. 각 개인의 일상의 문화취향에 따라, 위 4개의 가치자본이 서로 맞물려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나 깨나, 돈돈하며 경제적 소득에만 매달려, 문화적인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브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자본’은 비가시적인 무형의 자산으로, 개인의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높은 수준의 문화를 확보해, 차상급 계급에 진입하는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자본을 만드는 ‘취향’은 학교에서 얻어진다기 보다는 가족을 통한 ‘문화자본’ 전승의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삶에서 문화가 대단히 중요한데, 그 문화를 만드는 핵심은 ‘아비투스’ 즉 ‘취향’이며, 그 취향은 가정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가정이라는 막연한 형태가 아니라, 바로 부모 일상의 일거일동의 생활습성이 그 부모의 ‘문화 취향’이며, 자녀는 부모의 거울을 통해, 동일시와 각인의 학습으로 자녀자신의 문화로 고착된다는 것입니다.

가난의 대물림도 문화바탕이 없는 가계에서 전승된다는 것입니다. 우연한 시운의 덕으로 부를 얻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변천의 개연성으로 볼 때, 조부모와 부모의 ‘취향문화’가 자손에게 대물림 되면서, 문화승계를 통해 가족력이 형성되고, 인간행위의 아비투스적인 속성의 세련화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요인이 됩니다.

아비투스는 한편으로는, 습관(Habitude)이라는 개념과 유사합니다. 사람들의 일상의 습관을 보면 그 사람의 ‘문화 자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소비성향도 그 사람의 습관으로 서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일상의 습관과 소비성향이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현대는 소비사회로서, 일상은 소비를 끊임없이 이어가고, 가정은 소비의 집산지입니다. 그런데 소비라는 개념을 음식을 포함한 물질만을 생각하고, 오락· 여가생활· 취미활동· 예술영역, 심지어는 무료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을 포함한, 무형의 문화 활동을 우리는 소비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예술, 여행, 운동, 공부, 남녀의 만남, 인간관계의 모든 만남, 여가생활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활동행위가, 무형의 소비 형태입니다. 인간은 소비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비의 내용을 살펴보면, 천차만별의 가치차이의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도의 훈련과 지적인 가치체계로 이뤄지는 예술과 같은 문화소비가 있는가하면, 아무 노력도 없이 보고 듣는 것으로, 흉내만 내는 하류문화의 소비도 있습니다.

이렇게 문화라는 것은 일상의 ‘아비투스’ 즉 취향과, 소비성향의 선택 차이에 의해 천차만별의 계급구조를 만듭니다. 그러니 삶의 질을 높이려면, ‘문화자본’을 견고하게 해야하고, 그 문화자본을 견고히 하기 위해, 우아하고 고품격의 ‘아비투스’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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