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 “내 몸 죽으면 해부실습용으로 기증”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가 강연 중 캠핑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스프레이 눈과 음악까지 준비했다.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 생생한 캠핑특강

아시아엔(The AsiaN)에 <박상설의 자연속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박상설(87) 캠프나비 호스트가 23일 서울시 종로구 아시아엔 사무실을 방문해 특강을 했습니다. 몇 개의 텐트와 캠핑 장비까지 가져와 자연과 교감하는 삶에 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박상설 호스트는 우리나라 오토캠핑의 선구자입니다. 캠핑이 생소하던 1980년대부터 국내외를 여행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캠핑 장비만 두 트럭분이라고 합니다. 이날 강연은 캠핑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철학적인 면에 초점을 뒀습니다. 인상적인 내용을 정리해 싣습니다.

박상설 호스트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보여주고 있다.?여느 영정사진과 다르다.?1984년 9월5일 새벽4시50분 덕유산에서 찍은 모습이다. 늘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고 했다.

“저는 늘 시신 기증서를 갖고 다닙니다. 안에는 제 신분을 알 수 있는 명함(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캠프나비 호스트)과 유서도 함께 있습니다. 저를 처음 발견한 사람을 위해 돈도 얼마 넣었습니다. 자녀들에겐 어렸을 때부터 내가 죽어도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딸은 케이크만 놓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훈련돼 있습니다. 제 시신은 의대 해부실습용으로 사용해 달라고 썼습니다. 의대 해부용은 머리, 몸, 팔, 다리가 모두 잘려 보관되는 것으로 압니다. 사용 후 1년 뒤에는 화장해서 산에 뿌려주기를 바랍니다. 며칠 전 혈압이 올라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제가 응급차를 불렀습니다. 제 몸이 방치돼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서 캠핑을 하면서 죽는 게 제 소원입니다.?트로메라이(Tr?umerei)?음악을 들으면서.”

“자연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삶을 삽니다. 좋은 물건, 맛있는 음식, 아주 쉬운 것만 찾아다닙니다. 불편하지만 아껴 쓰고, 생산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늘 씨를 갖고 다니며 길가에 뿌립니다. 우리 자녀들이 커가면서 길가, 산에 핀 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여러분도 늘 씨를 갖고 다니면서 뿌리십시오. 보고 자란 아이들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제가 이 씨를 주면 추운 밖에 보관하세요. 씨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명력을 키웁니다. 씨에 생명, 가능성이 있습니다.”

늘 목에 걸고다니는 종이봉투에는 시신기증서, 명함, 유서, 보상금이 들어 있다(왼쪽, 중간) 길을 걸으면서 항상 길가에 꽃씨를 뿌린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꽃씨(오른쪽).

“캠핑 다음날 아침 풀잎에 매달린 물방울을 자세히 한번 보세요. 윗부분이 살짝 들어가 있습니다. 풀잎 끝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대기압력에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햇빛에 반짝이는 물방울은 경이롭습니다.”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26일 오전 6시 참회록을 쓴 후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11월 3일 역장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톨스토이는 부활, 전쟁과 평화 등을 쓴 대문호지만, 정작 자신은 많은 인습에 붙잡혀 인생의 참 의미를 모르고 살았다고 참회록에 썼습니다. 그리고 기차역으로 향한 것입니다. 괴테는 1786년 3월 시끌벅적한 생일파티를 치른 새벽 널브러진 광경을 보고, 당시 장관이었던 자신에게 아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왁자지껄한 삶에 갑자기 회의를 느끼고 새벽 3시 집을 나섭니다. 그리고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납니다. 여러분 홀로 무거운 짐을 메고 하염없이 걸어 보십시오. 홀로 텐트에서 촛불을 켜고 밤을 맞이해 보십시오. 자연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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