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서로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가족
삶의 고향은 강원도, 경상도 아닌 ‘자연’
나는 고된 산행과 캠핑을 통해 자아에 대한 의식이 싹트면서 내가 나를 살게 하고 내가 나를 믿게 됐다. 사람은 ‘자기애’에 빠져 자기 자신에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자아에 대해 길들이고 훈련시키려 하지 않는다.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처벌(채찍질, 노력, 인내 등)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인간의 비애가 자라난다. 인생에 성공한 사람은 항상 스스로를 성찰하고, 처벌하여 죗값을 스스로 치러가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내가 나에게 가혹하리만큼 담금질을 하는 것이다. 그 담금질은 이제껏 살아온 집이나 직장 내에서는 살아온 습관화된 속성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속성화된 틀을 벗어나 넓은 자연에 나가 자연과 맞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 서바이벌 게임은 자연이 우리에게 처벌과 흥미(재미와 고생)를 동시에 갖게 하는 놀이이며 훈련이다. 인생을 긴 안목으로 설계하고 시야를 넓게 폈을 때 종착역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리라. 삶의 고향은 내가 태어나 자란 강원도나 경상도가 아니고 ‘자연’ 자체이며 또한 삶은 ‘여행’이다.
사람의 몸은 다리부터 약해진다고 한다. 중병에 걸리거나 극도로 노쇠하면 단 한 걸음도 스스로 걷지 못한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이 교훈을 항상 간직하고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산책한다. 노쇠와 투병이란 병이나 쇠잔(衰殘)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다. 육체적인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에서 우러나오는 총체적인 삶의 건강을 추구한다. 근육질만 키우는 것이 건강인가? 자연과 가족과 함께하는 건강가족은 가사일을 같이 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
자유의 기본은 홀로서기
가족의 존재 이유는 맹목적 사랑이 아니라 합리적이며 초월적인 사랑으로 ‘즐거운 나의 집’을 만드는 일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냉정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사람은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려 사랑하게 된다. 다른 풍경이기에 멋진 것이다.
나의 조상은 내 가족보다도 사회가 먼저라는 공공성의 사고를 가지고, 내 가족에게만 매몰되어 좁고 옹졸한 삶에 구속되지 아니하며, 서로 가족의 짐을 내려놓고, 넓은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렇게 되려면 온 식구가 독립적 생산자로 자립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나는 26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누워서 죽을 것인가, 걸어서 살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눕지 않고 캠핑과 산행을 계속한 끝에 지금 기적같이 살고 있다. 말하자면 스페어 인생이니 그저 고맙기만 하고, 그래 자유인이 된 까닭이기도 하다. 나는 틈만 나면 텐트를 싸 짊어지고 아무데나 발길 닿는 대로 달리고, 걷다가 야영을 한다.
2년간 해외 오토캠핑여행을 할 때 엉뚱하게도 1인용 텐트를 휴대하고 미국, 캐나다, 알라스카, 네팔, 인도, 유럽, 그리고 일본, 중국 등을 다니며, 캠핑으로 열 배를 더 즐겼다. 물론 죽도록 고생했고 초라한 음식에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모름지기 이게 바로 발로 뛰는 행위문화이다. 그때 사귄 지구촌 수십 명의 사람들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편지교류를 하고 있다. 이게 다 캠핑 덕택이었다. 이 모든 것은 자유에의 갈망, 그리고 방랑벽을 채워주는 멋지고, 통쾌하고, 유쾌한 삶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까?
험준한 대자연 속에서의 ‘담백한 삶’은 인위적인 매체 없이 나를 순수한 자연에 투영, 객관화시켜 내가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고귀한 시간인 동시에 내가 나를 비울 수 있는 무아의 경지이기도 하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산 속에서 만나는 숲, 계곡의 물소리, 이름 모를 산야초, 이끼 낀 바위, 맑은 새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 문명과 동떨어진 눈 덮인 산야, 나의 발자국소리, 이 모든 것이 나를 소스라치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닌다.
일상생활을 통해 소중히 여겨왔던 나의 사사로운 일들이 이런 것들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것들이라 여겨지는 여백의 시간. 아! 이것이 바로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하고 많은 허구와 무가치를 깨우치게 하는 힘을 지닌다.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지만 이제 우리는 새롭게 산에서 태어나는 찰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