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오대산 계곡에서 임진강까지 ‘뚜벅뚜벅’
인간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국토순례??
인간은 재화에는 비상한 관심을 집중하지만 국토의 생명줄이며 생존의 원천인 수계에는 관심을 별로 기울이지 않는다.
우주적 생명력이 샘솟는 원천은 깊은 산속 계곡이다. 국토 수맥의 발원지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꿰뚫고 알아야 한다. 진정 깊은 것들은 관심 밖의 후미진 곳에 숨겨져 있다.
국토순례는 길 따라 한다. 호연지기로 백두대간 종주를 자랑한다. 그러나 작심하고 말한다.
우리나라 강산을 굽이굽이 휘돌아 광막한 바다로 흘러드는 큰 수맥을 낱낱이 답사하는 일이, 어떤 이벤트보다 우리 강산을 사랑하는 값진 학습이며 삶을 향한 투명한 의무란 것을.
이는 ‘삶의 기본’을 다지는 필수 훈련이며, 언제나 자신의 위치부터 확인하는 ‘실전 독도법’의 길이고, ‘객관적 사유체험’의 시발점이며, ‘과학적 지리탐험’의 실습을 통한 새로운 발상의 ‘국토 순례’이고, 몸을 던져 ‘국토를 사랑하는 자각’이다.
필자는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의 수계는 1/5 정도만 답사했지만, 북한강과 남한강의 수계는 90% 정도를 직접 답사했다.
산을 알려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 나를 알려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인물과 환경을 먼저 알아야 하듯이.
지구는 46억 년 전에 생성되어, 최초의 수억 년 동안 85%의 해수를 뿜어내오다 현재의 해수 량이 된 것은 약 1억 년 전이라고 한다.
그 해수가 수증기로 증발해 구름이 되어 비와 눈을 내리게 하고, 강과 호수 빙하를 거쳐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는 생태계에 생명을 베푸는 순환의 섭리이다. 사람의 인체에도 70%의 수분이 차지하고 있어 물과 생명은 한 몸이다.
이런 연유로 봄이 되면 나는 오지의 계곡을 찾는다. 어떤 소망과 기대도, 싫고 좋고를 가르지 않고 마냥 걷는다. 어디까지 내 땅인가? 이성과 결합된 치유의 영역은 끝이 없다. 물소리는 생각을 지우고 나를 혼자이게 한다. 흐르는 풍경이 고독과 인간을 만든다.
봄 산은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모든 것이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숲은 나날이 자라는 게 분명하지만 그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똑같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계곡에 들면 세상을 향해 고아가 된다. 혼자서만 느끼는 충족감은 고독의 절정이다.
사람도 한강의 수맥처럼 자유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과 산은 서로 만나서도 모른?체 한다. 산이 강에게 나아갈 길을 양보해 준 것인지 물줄기가 산을 뚫고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물줄기는 낮은 땅의 유순한 곳만 골라서 간다.
그 물줄기는 내륙산악지대의 산들이 맞닿은 계곡의 집수지에서 흘러내린다. 물은 산골사이를 끼고 험한 낭떠러지를 휘돌아 소용돌이치며 흐른다. 그 물줄기는 신운하고 강력하다.
물의 발원은 산골이다. 산골 물은 가파른 바위 사이를 굽이치며 수렁에 빠져 쏜살같이 곤두박질쳐 흘러간다. 사방에서 흘러드는 지류의 시원을 모두 거느리고 도망친다. 계곡은 바쁘다.
세상만사 다 잊고 텐트를 싸 짊어지고 깊은 계곡에 들어, 적어도 하루 이틀 쯤은 몸이 계곡이 되어 인간과 세상 사이를 훔쳐볼 일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듣고 떠났다. 가랑비는 나의 초대장이 됐다. 텐트를 조근조근 적시는 빗소리는 폐부를 찌르는 바흐의 ‘꿈속의 몽상’ 랩소디로 가슴을 친다.
세상은 보일 듯 되살아나며 새잎이 불가능에 대한 희망을 준다. 정말로 세상을 떠도는 자로 자연과 나와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너무 기뻐 속으로 울었다. 빈곤한 언어로 이 봄을 다 말 할 수 없는 응답이다.
한강 하류 자유로를 따라 임진강변에 이르는 길은 낙조의 길이다. 바삭거리는 갈대군락을 넘어 석양과 저무는 갯벌 너머의 먼 바다를 바라본다. 소리를 낼 수 없는 갈대는 바람에 스치어 소리를 내준다.
제 소리가 아닌 대신 내주는 소리는 결핍이고 쓸쓸하다. 이런 희망 없는 대역을 물길은 모르는 채 흘러만 간다. 설악산, 오대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한강 하류 임진강과 한 몸이 돼 갈매기의 마중을 받으며 서해로 흘러든다.
이제 한강 수계탐험의 대장정은 끝났다. 이 강산의 뿌리는 변함이 없다. 사람들이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보아주고 보듬어주고 가꾸어 주느냐만 남았다. 사람도 한강의 수맥처럼 자유롭다면 얼마나 좋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