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아련한 봄산의 기억


이내 슬어 없어질, 그리운 ‘쑥향’

이때쯤 되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외딴 두메마을의 옥수숫대 김치 움집을 지나쳤다. 얼마동안 침묵이 흘렀다. 언제 적 움집이던가. 다 삭아 흔적만 남았다.

마음 가는 곳이 있어 집 뒤 언덕을 향했다. 산행 때 ‘달래’를 한줌 나에게 건네주던 헐빈한 할망구. 혼자 살던 그는 수년 전 집 뒤에 누웠다. 그는 ‘터앝’에서 시름하다 그렇게 떠났다.

할망구가 쑥 뿌리를 당기니 젖먹이의 살결 같은 밑줄기에서 알싸한 봄내, 부드럽고 새하얀 향취가?풍겼다. 달래를 건네주던 ‘쭈그렁덩이’ 손목을 꽉 잡고 주저앉고 싶다. 음산한 봄옷 입은 ‘산할아비’, 그냥 구슬퍼 글썽인다. 쑥 뿌리를 꽉 싸잡고 온몸을 조아렸다. 할멈의 쑥향이 온종일 같이 한다.

언젠가는 지나칠 때 라면을 건네줬다. ‘건 머유?’, ‘집에 할머니는 있쑤?’, ‘왜요?’ 하고 되물었다. ‘글쎄 늘 혼자길래.’ 그는 지금도 궁금해 할까. 산자락 저편으로 봄날이 떠있다. 산속의 긴 겨울도 금이 가니, 틈새로 물이 졸졸 흐른다. 눈이 녹아 없어지듯 이 정경도 이내 슬어 없어질 것들···.

그니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게 웬일인가. 커피를 내리는데 서재에서 왁자지껄 여자들 소리가 난다. 황급히 발을 옮기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바랐던 착각인가.

‘너’라고 하기엔 거북한 ‘그대’, 아니 ‘그니’들 소리였다. 옛날 자주 듣던 귀에 익은 그들의 ‘산(山) 소리’. 아득한 회상이 생각을 낳고 생각은 또 회상을 한다. 마른 방에 봄이 왔다. 하고많은 밤을 지새워 무언가 지껄이며 우의를 다지던 ‘그니’들. 이 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그니’들을 떠올린다. 어느 때는 깊은 산중에 마주앉아 멍하니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았다. 자정 능선 넘으며 비수어린 초승달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길 없는 험악한 산을 헤매며 우리가 제일 멋지다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설날같은 명절 때도 집을 버리고 자유와 해방의 히피로 깔깔댔다. 그들은 그때 20대였으니 지금은 50안팎 나이쯤 됐을 게다. 한창 멋스러운 나이인 그들의 자화상이 무척 궁금하다. 이런 옛글이 있다. <나이 50이 되어 돌아보니 49년이 헛되었다(五十而知 四十九非)>. 그들의 예전이 또 나른 나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옛 ‘그니’들이 다시 궁금해졌다. 혹시 병원에 누워 있지 않나? 남편과 서로 노려보며 갈등에 지쳐있는 건 아닌지. 부모 자식 걱정하느라 주름이 몇 개 더 늘었나? 며칠 전 K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건강하시죠? 요즘 봄이 되니 그 옛날이 너무너무 생각나요. 깐돌이 선생님! 뵙고 싶은데 미안해요. 선생님만은 돌아가시면 안 돼요. 너무 아까워요.” 나는 죽지 않는다! 죽어서도 살 것이다. ‘그니’를 다시 볼 것이다. 헛소리 마음껏 하는 지금이 산 증표인가?

노인정에나 가시죠? 나는 산행 중이오!

초인종이 울렸다. 젊은 여자다. 국가보훈처에서 나왔다고 한다. 왜냐고 물었다. 집에 전화를 몇 번이나 해도 받지를 않아 찾아왔다고 한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건강하신가요? 어디 불편한 데 없으세요?”하며 어색해 한다. 아하! ‘저승사자 하수인’이로구나. 이제 나도 이 지경에 왔구나. 운구차는 갖고 왔나요? 하고 농을 하려다 실수를 했다. “산에 갔다 오느라 전화를 못 받았네요.” “어머나! 큰일 나시려고, 꽃샘추위에 감기 드시려고. 노인정에나 나가시지요” 한다. 그리고 ‘사인’을 하란다. 죽고 사는 게 ‘사인’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는 이럴 때 어찌해야 하나? 저승사자 알바 또 올까 겁난다. 알바 몰래 내일 산에나 가야겠다. 119구급차 올까 무섭다.

글쓰고 난 뒤의 미진한 여백. 서성이다 행주치마 걸치고 부엌에 든다. 이렇게 남은 날을 살 일이다. 날이 저물고 비가 내린다. 지금쯤 개구리 합창 막 시작할 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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