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세 캠핑 마니아 “자연으로 돌아가자”

<인터뷰>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
캠핑 전도사 박상설 호스트. 그는 “자연에서 고기먹고 술 마시는데 캠핑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며 “자연속에서 홀로 나를 대면하는데 캠핑의 참다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오토캠핑의 선구자 캠핑 장비만 두 트럭 
차 지붕에도 텐트 장착, 겨울 철원평야서 야외취침도

8년 전 77세의 나이에 킬리만자로를 등반하고 야외 캠핑을 즐긴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던 박상설(85) 캠프나비 호스트. ‘지금도 여전할까’ 건강칼럼을 청탁했던 인연으로 며칠 전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 너머로 젊은이 못지 않은 힘이 전해졌다. “건강하시군요” “그럼요. 아직 팔팔합니다.”

일사천리로 약속시간을 정하고 7일 인천 동양동에 위치한 아파트로 찾아갔다. 3월이긴 하지만 여전히 추운 요즘, 박상설 호스트는 반팔 차림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안 추우신가요?” “단련이 돼서 춥지 않아요.” 박 씨는 이번 겨울에도 매주 한 번씩 야외 캠핑을 즐겼다. 지난 11월에는 철원 평야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기도 했다. 사람 몸은 저항하면서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가 캠핑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뇌졸증으로 쓰러지면서부터다. 미국과 일본의 유명한 병원을 찾아다닌 그는 뇌로 통하는 혈관이 막혔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그에게 등산을 권했다. 등산을 하면 혈관이 확장돼 혈액공급이 잘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때부터 등산을 시작해 전 세계의 유명한 산이란 산은 다 찾아 다녔다. 등산 뿐 아니라 트레킹, 여행도 즐겼다. 병은 서서히 나아갔다. 지금은 캠핑 생활에 푹 빠져 아예 캠프 호스트로 나섰다.

캠핑의 매력은 뭘까. 그는 “개인적으로 캠핑을 ‘야외취향문화’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멋지고 그윽한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체의 권위와 모든 속박과 갇혀있는 삶을 벗어나 자연과 독대할 때 누릴 수 있는 무한한 기쁨, 평안이 있다”고 말했다.

홀로 살며 밥 짓고 김치도 만들고

박 씨가 손수 만든 식혜. 김치부터 고추장아찌까지 못 만드는 음식이 없다.

최근 들어 등산, 오토캠핑 등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전국의 오토캠핑장만 1천여 곳에 이른다. 박 호스트는 아웃도어란 말이 생소한 1990년대 초부터 오토캠핑, 산악 트레킹을 즐겼다. SUV 차량 지붕에도 루프텐트를 설치해 어디서든 캠핑을 한다. 참고로 그의 캠핑 장비만 두 트럭 분.

가족들이 그의 이런 생활을 이해해 주는지 궁금했다. “아내, 자식들과 따로 살아요. 사이가 나빠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젊었을 때부터 그랬으면 문제가 됐을텐데, 가장으로서 책임은 다하고 70대부터 시작한 거니까. 다들 이해해주고 전화와 이메일로 안부를 묻고 있어요. 물론 함께 캠핑도 하고요.”

49㎡(15평) 규모의 아파트는 80대 노인 혼자 사는 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손수 음식도 만든다. 기자에게 갖다 준 식혜도 직접 만든 것이었는데 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만든 그 맛이다. 다음 주에 만들 김치 재료라며 베란다에서 무와 마늘도 가져와 보여줬다. 아내와 자녀들이 갖다 주는 음식이나 반찬가게에서 음식을 사먹을 법도 한데 왜 이런 고생을 할까.

“고생이라고요? 음식을 만들고, 집을 정리하는 일이 참 즐겁습니다. 음식을 만들 때는 일종의 창조적 희열도 느낍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왜 남의 도움을 받습니까. 혼자만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단독으로 수년간 세계 탐험을 하면서 직접 가져 온 여행 정보지와 문학, 철학 서적이 가득한 서재.

“몸을 움직여야 정신이 움직인다”

박 호스트는 캠프나비(campnabe)라는 동호회를 만들어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연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캠프나비는 자연(natural)과 존재(being)의 합성어.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삶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에게 캠핑은 문화운동이자 인성 교육이다. 갈등과 불신의 세상을 자연의 힘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매월 회원들에게 보내는 ‘나침반’이란 이메일 편지에 잘 묻어난다.

‘2월 나침반’의 한 대목. “밥 한 공기, 라면 한 봉지, 옷, 휴지 등 모든 물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 이상으로 내면세계를 살찌우는 일이 더 아름다운 삶을 찾는 생태적 자기경영이다. 성공학, 행복론, 뻔한 컨설팅, 얄팍한 비법 등을 멀리하고 숲에서 자유로운 바람을 쐬며 숲에서 길을 묻자. 모든 길은 희망의 또 다른 여로이다.”

요즘 그는 게릴라 산행을 즐긴다. 길 없는 곳을 걸어가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얼어붙은 홍천강을 종일 걸었다.

“손이 어는 듯 한 고통도 있었죠.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하고요. 하나의 아름다움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고통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문명이 비켜선 그 길에서 시원의 감동을 느낍니다.”

하루살이에 급급한 샐러리맨들에게 그의 이야기는 아득하다.? 이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마지막으로 물었다.

“루소의 ‘Connfession’?중 이런 글 귀가?있어요. ‘걷는 것에는 생각을 자극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뭔가가 있다. 한 곳에 머물러 있을 때는 생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정신을 움직이게 하려면 육체가 움직여야 한다’. 도시 공간에서도 인적이 드문 공원을 시간 날 때마다 홀로 걸어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길 바랍니다.”

박상설 호스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으로 육군 공병 장교 전역 후 기술고시에 합격해 건설부장관 비서관, 경남기업, 한국양회에서 중역을 역임했다. 현재 그의 직업은 해외여행 안내자, 캠핑 강사, 심리치료사. 뇌졸중을 앓던 시절, 동아일보와 백병원이 실시한 제1회 투병문학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실력파 글쟁이이기도 하다.

루프텐트가 장착된 그의 차량. 차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취사가 가능하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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