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내 꿈은 지금 펼쳐진다
토론하며 소통하는 유럽인의 ‘살롱 문화’
50세 전후 여성을 ‘나이 지긋한 여인’이라고 한다. 굳이 말하자면 ‘아주머니’, ‘부인’, ‘주부’라고도 부른다.?여기서는?‘레이디(Lady)’라는 단어를?사용하려고 한다.
그 레이디를 ‘샤빼롱(chaperon)’이라 여기고, 크리스털글라스의 신비스러운 광채가 어린 와인의 향기를 상상하자. 샤빼롱이란?우아하고 세련된 성장을 갖춰 입고 젊은 숙녀를 대동하여 사교모임에 참석하는 교양 있고 예의 바른 나이 지긋한 ‘레이디’를 이른다. 50세 전후의 귀부인이다.
옅은 향이 나는 미니부채와 오페라하우스의 망원경을 손에 들고, 가냘픈 몸매에 품위 있는 지성이 은은하게 풍기는 여인은 계몽시대와 모던시대 문예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이제 샹그릴라(shangri.la) 살롱에서 담소하는 샤빼롱을 엿보자. 그들은 음악회, 갤러리, 오페라하우스, 살롱 등의 사교장소에?모여 담소하며 품격있는 문화를 즐겼다. 유럽에서는 르네상스에 이어 17~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살롱문화가 이태리 등 점차 전 유럽으로 전파됐다.
살롱은 단순한 사교장이나 오락장이 아닌 지성의 산실이었다. 계몽사상의 창출과 전파에 상당한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혁명의 기틀을 마련했다. 영혼의 만남과 문화 담론의 장이 된 살롱문화는?오늘의 서구문화를 이끌었다.
우리가 서양인을 개인적으로 이해하기는 무척?쉽다. 그러나 그 개인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일상화한 사교적이고 사회적이며 자연을 사랑하는 훈련된 자유인이다.?풍파를 이겨내고?평화와 안식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정의와 규범을 잘 지키는 시민들이다. 유럽인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폭 넓은 사교성은 그들의 부모와 조상 그리고 이웃과 살롱광장에서 대화와 토론문화로 다져진 것이다.
억압과 통곡의 삶 살아낸 조선시대 여인들
늘 산을 오르면서도 내가 바라는 세상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세상을 항해하고 싶은 열망으로?소아적 존재방식을 슬피 여기며 산을 드나들었다. 삶에 있어 어떤 발생사적 필연이 있다면 와인잔을 기울이며 담론을 즐기는 아고라(Agora)의 ‘가인재녀(佳人才女)’를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재치와 아취(雅趣) 그리고 세련된 지성과 말씨와 에스프리는 그대로 시이며 문예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우리의 사정을 생각해본다. 19~20세기 격동기 조선시대의 봉건적인 남존여비 풍속을 살펴보면 여인은 짐승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여인들은 억압과 통곡으로 몸부림치며 노예나 제물로서 삶을 마감했다. 내가 어렸을 때인 70년 전만 해도 여인은 죄인처럼 갇혀 살아야 했고 갖은 모멸과 비인간적인 수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여인들은 오로지 여자로 태어났다는 죄 아닌 죄로만 살아야 했다. 그 누구도 이 잔악무도한 죄악을 고발하지 않았고 외면했다. ‘이규태’ 작 <세상의 불샹한 죠션 녀편네>란 책을 다시 펴들고 보았다. 인간의 존엄을 짓밟은 포악한 역사를 비통한 마음으로 개탄하며 주위를 다시 살펴본다. 또 다른 형태로 고통받는 ‘현대판 인간 군상’이 떠올랐다. 그 인간들이 눈 뜰 날은 언제일까? 한숨지으며 책을 덮었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희생물이 안 되려면 그 역사에서 탈출해 개인 인생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 밖의 고아로 당당해야 한다. 그 고아는 홀로서기여서 자유롭다. 역사의 역전(逆轉), 즉 미래에 있을 역사를 개인적이고 선택적인 현재로 둔갑시키는 변증법(辨證法), 역이용 변증법이다. 이런 학설은 없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이 메커니즘을?활용해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려고 힘써왔다. 흔히 말하는 이념이나 진보 따위가 아니라-그것에 또 인간은 현혹되고 구속당하므로- 자연을 주축으로?개인의 취향문화를 펼치는 자유영역의?문화설계를 말한다.
미래를 당겨 와 지금에 쓰는 철학이다. 유물론, 유신론이 아니라 ‘유연론(有然論)’이다. 사전에 유연론(有然論)이나 유연론(唯然論)이라는 단어가 없어 다행스럽다. 학설을 만들어 내는 최초의 재미다. 미래 시공간의 실체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미래의 꿈이나 생각, 구상 등과 같은 무형가치의 관념은 얼마든지 현재화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특권이다. 유연론을 무슨 종교나 이념처럼 신봉하고 심취하자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조립하고 해체하고 굴리고 날리면서 순간순간의 변화를 즐기자는 것이다. 자연에 노는 보람,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