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잊혀진 화전민을 찾아서③
이것을 씹어야 하나 핥아야 하나, 먹어야 하나…슬픔을 먹는 화전민의 삶
화전민과의 만남은 건강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웠다. 남들은 가벼운 사연쯤으로 여길지 모르나 너무나, 너무나 애잔한 사연들이 기막히게 수런거린다.
그들은 오직 먹는 것 자체가 비애였다. 먹는 게 원수였고 생존의 뜻마저도 무위였다. 먹는다는 것은 슬픔을 먹는 것이었고 흐느끼며 삼켜야 했다. 먹는 것만큼 절박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쌀밥은 일년 내내 구경조차 할 수 없고 감자 옥수수 범벅을 마주하고 있으면 슬픔은 절정에 이른다.
이것을 씹어야 하나, 핥아야 하나, 먹어야 하나. 이것을 넘겨야만 힘을 쓸 텐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이것마저 떨어져가니 이제 말려놓은 산나물과 무청 시래기를 삶아 쑤셔 넣어야 할 판이라고, 뇌까린다.
화전민들은 먹는다하지 않고 ‘쑤셔 넣는다’, ‘처먹는다’ 한다. 찐 감자와 간장에 물을 타서 부추잎을 둥둥 띄운 냉국을 놓고 어서 빨리 처먹어, 이 지겨운 것아··· 이 애물단지야! 이것마저도 내일부터는 떼울거리가 없어, 이 웬수야··· 한다. 이놈의 지겨운 몸뚱아리는 언제 꼬꾸라지려나? 그놈의 오라질 저승사자는 어디로 갔길래 오늘도 나를 안 데려가나···.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아, 추석은 며칠 안 남았고 해는 나날이 짧아져 곧 엄동설한이 닥쳐올 텐데 하늘도 무심하다며, 이 세상에 대한 원망을 통틀어 해댄다.
사방이 높은 산 뿐이고 돗자리만큼만 하늘이 빼끗 보이는 비탈진 산에 불을 놓아 작은 화전을 일구었다. 말이 밭이지 태반이 돌 자갈이어서 쟁기도 제대로 쓸 수 없고 화전민의 손은 흡사 원숭이 손에 가깝다.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고 움막에서 먼 거리에 있는 산지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으면 땅의 지력이 약해져서 매년 순환농사를 지어야 한다. 산골의 토지가 워낙 황폐한데다 가난해서 비료도 못 사 쓰니까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소출은 형편이 없다.
농작물은 감자, 옥수수, 귀리, 조, 콩, 수수 등이지만 주식으로 쓰이는 것은 감자와 옥수수가 태반이다. 멍석만한 경사진 텃밭에 푸성귀와 파, 마늘, 깨 등의 양념거리를 심어 반찬으로 이용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산속을 헤매어 닥치는 대로 먹을거리를 채집해서 자급자족하는 방법 외에는 딴 옴치고 뛸 방법은 전혀 없다.
병이라도 들면 꼼작 없이 앉아서 죽어야 했다. 병원이란 것은 화전민에게는 애당초부터 없는 것 이였다. 약도 돈이 없어 약국에서 사올 수 없고, 민초에서 전해 내려오는 약초를 수집해 쓰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 산에서 나는 당귀, 산구절초, 백도라지, 만삼, 더덕, 명아주, 둥굴레, 용담 등을 귀하게 여기며 신주처럼 모아둔다.
암, 뇌졸중, 폐질환, 심장병 등 중병이 걸려도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그저 속앓음병이니 화병이니 하며 운명에 맡겨 한탄이 약이다.
화전민의 재산 중 제일 값어치 나가는 것은 단연코 무쇠솥이다. 다음으로는 곡괭이, 톱, 도끼, 삽 등의 농기구이고 다음이 부엌에서 쓰는 함지, 물통, 장독과 약간의 식기이다. 전기가 없으니 가전제품은 애당초 없고, 옷가지래야 한두 벌만 가지고 평생을 난다. 집도 산에서 얻은 목재와 자연 재료를 써서 자력으로 손수 지은 것이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도 식구들이 가내작업으로 만든 것 이어서 석기시대를 방불케 하는 원시의 생활상이다.
가난은 대를 이어 후손으로 이어져 갈 수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