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좋음’과 ‘행복’은 집 안에 살지 않는다


이 나라 산천이 예전 같지 않다. 어느 산골에 가도 민박집, 펜션, 카페, 노래방, 술집이 즐비해 옛 정취는 보기 어렵다. 가끔은, TV 신문도 없고, 마을도 없는 적막한 오지가 그립다.

인간의 마을을 떠난 ‘샘골’··· 산속에 또 산이 눕고 계곡 속에 계곡이 요동치며 모든 굽이 휘돌아 어느 길이 제 길인가. 춤추는 연두 그늘 제 각기 펄렁이며 텐트 어서 펴자고 한다.

가을을 기다리는 야생화는 폭양에 맞서 색의 추억 남기려 햇볕 냄새 풍긴다. 나는 이미 오늘 가을이 찾아오면 들국화·억새 물결 언덕에 뒹굴 벅찬 꿈을 나직이 품었다. 여름은 신록으로 오지만 새소리로도 오는가 보다. 새벽공기 가르는 산새소리 어떤 설교보다 더 평화롭다. 이런 아침이 있기에 캠핑을 고집한다.

여름의 샘골은 가득하다. 갓 올라온 연두잎 엊그제 같은데 이제 폭양이다. 두 달 지나면 추석 몇 번의 추석이 지나면 생은 끝장이다. 삶은 애상···. 노인은 다만 소멸을 앞둔 절정을 향한다.

‘Camp nabe 주말 레저 농원’이 있는 샘골은, 홍천에서 양양으로 이은 56번 국도를 따라 오대산 북쪽에 이르면, 북한강의 넓이가 불과 20~30m의 폭으로 좁아진다. 이쯤에서 다리를 건너 샛길로 한 구비 돌아들면, 거짓말 같은 원시의 골짝이 숨어있다.

이곳은 험준한 백두대간과 해발 1,500m 오대산의 수많은 골짜기에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북한강 발원지 중 한 곳으로, 해발 600m의 청정고랭지 ‘샘골’이다. 인근에는 숱한 비경을 거느린 숨어있는 계곡과 숲이 즐비하다. 샘골에는 나의 비닐하우스 농막 캠프 외에는, 집 한 채 없는 겹겹이 산으로 감춰진 골짝이다.

나는 늘 하던 버릇대로 1/5000 정밀지도를 펴들고, 숨어있는 골짜기를 찾아 떠돈다. 숲, 계곡마다 하나하나, 다 들여다보며 부산을 떤다. 산속은 어딜 가도 새롭기만 하고, 바라는 목적지는 없다. 해맑은 냇물소리, 돌아서지 못하게 나를 잡는다.


삶은 숲에 순응하는 싸움인가? 숲, 계곡은 홀로 제 스스로 있다. 그들은 끝끝내. 침묵의 무서움이 가득하고, 찾아든 나에게 느슨한 헐거움으로 모른 채 한다. 숲은 세상의 의미를 낚아 올리는 소리로 수런거린다. 인간들의 돈벌이, 성공학 씁쓸하다.

만드는 문화가 아닌 기르는 문화··· 숲이 키우는 문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그 문화는 어디에 사는가? 이날 이때껏 살아오면서, 나 자신과 불화의 접점에서 싸움은 치열했다. 삶은 죽음의 덧없음을 잊기 위한 싸움인가?

숲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운다. 모든 인간들은 뼈 가루로 산에 당도해, 삶을 죽음과 바꾼다. 삶과 죽음은 해 뜨는 것과 날이 저무는 것과도 같다. 인간들은 덧없는 것들의 영원함에, 끝끝내 속고 사는 멍청인가?

죽음을 예비하고, 떠나는 이유를 묻지 말자. 숲은 그대로이지만. 나는 숲에 신경 쓴다. 숲은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고, 잔잔한 생각들을 바람에 포개며 나마저 숲이 되게 한다.

날이면 날마다 속수무책으로 바삐 돌아가는 인간들··· 뜻 모르고 헤매는 역사의 도구에 불과한 인간상···? 사람의 몸은 이미, 사위어가는 풍화에 있다. 모든 인간은 그러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소망은, 몸의 건강이 최우선이고, 다음이 마음의 평안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마음대로 안되는 게 인간의 삶이다.

육체와 정신의 문제 뿐 아니라, 생계와 인간욕구들이, 총체적으로 서로 엉켜,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력을 다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것은 지식으로, 이지적으로, 또는 가족구성원을 이해시키고 달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원초적 고뇌가 삶의 밑바닥까지 헤집고 왔는데도, 우리의 의식은 아직 그것을 헤쳐 나갈 마땅한 처방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집 구석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좋음’과 ‘행복’은 집 안에 살지 않는다. 그 갈등의 해결책으로, 인습과 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더 잘 살기 위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샘골과 같은 산간벽지를 자주 찾아, ‘나를 돌아보고 나를 비우는’ 고랭지 캠핑훈련을 오직 우둔한 소처럼 한발 한발 온 몸으로 강도 높게 밀고 나가는 실천만이 해결책이다.

가끔은 이런 자연에서의 절제된 생활이, 삶을 북돋아 원초적 고뇌를 잊게 하는 것 같다. 샘골에서, 소박한 풍요로움을 꿈꾸며··· 실험 체험을 강도 높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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