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고택의 여백’에서 부는 바람
거창 동호 ‘고택마을’ 기행
향기 그윽한 고택 마을 아스라한 봄, 저만치 고택솔밭 손짓한다. 지도에 없는 고고의 마을, 봄바람 저편에 떠있다. 민들레로 수놓은 파랗게 난 봄길, 돌담에 둘려 싸인 고옥, 봄빛에 졸고 있다.
고택마을을 우리가 빼먹고 잊고 산지 오래다. 아니 아예 잃고 살아왔다. 불과 30분 돌아보는 시간에도 ‘순간순간 샘솟는 흥분’에 휩싸였다. 삶과 느림과 자연과의 어울림으로 옛 정취의 풍류가 아스라이 스미는 감동은 딴 곳에서는 어림도 없는 살아있는 인문학 기행이다. 내 평생에 이렇게 평온하고 고요한 찰나의 여정이 또 있었을까?
고택순례를 하며 100~200년을 단번에 거슬러 올라가 전에는 보이지 않던 벅찬 장르에 오싹해진다. 고택의 뜰은 옆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꽃밭 길이고, 돌담은 하늘과 산과 나무를 아우르는 비선형정물이다. 담 넘어 나무는 내 집의 그늘이 되고 내 집의 꽃밭은 길손의 것이다.
흙돌담은 너와 나와의 벽이 아니라 이웃과 정을 나누며 영산홍사이로 애환의 조각을 엮는 나지막한 정겨운 하나의 예술품이다. 수십 년씩 묵은 매화나무들이 동시에 꽃을 피우는 황홀한 모습은 고택마을의 축제이다. 어떤 공원에서도 볼 수 없고 선진국 어느 ‘빌리지’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의 사치! 우리의 이야기이다.
걷핥기로 해온 내 세계여행의 시각이 부끄럽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노마드(Nomad)의 보헤미안 생활을 미치도록 고집해온 연유로 우리 고유의 ‘선의 집’과 ‘넉넉한 정원’에 눈길을 보내지 못한 까닭이기도 하다. 산에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조국강산의 마음’을 ‘정겹고 유연한 눈길’로 우리 마을 곁에 옮겨다놓을 생각은 못했다.
자연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병든 도시 속에서 불안한 그림자에 늘 시달려왔다. 산을 오르면서도 힘겨운 도전만이 다인줄 알았다. 고색 찬란한 집 한 채, 뜰에 우뚝 선 고목나무 초승달에 걸려 쉬어가는 구름을 못 보는 아쉬움은 나만의 한인가?
고택의 여백, 쓸쓸이 웃는다
고택 길을 걸으며 나 자신이 치유와 안식의 풍경이 되어 소풍길 어린이가 됐다. 고목나무와 막 피어오르는 꽃나무 숲에 숨바꼭질 하며 생의 불꽃처럼 우리는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이 아름다움을 놓고 먼 옛날에 소멸된 육체는 영혼만이 집 어딘가에서 한 맺힌 넋으로 서성이는 것 같다.
양반의 세도가 불길처럼 드셌지만 이제는 모두 소용없는 일, 바뀌고 또 바뀌는 인간의 생애는 이런 것인가? 전설의 고택에서 쉴 새 없이 묻는다. 옛 주인 떠난 고옥을 지키는 느티나무만 홀로남아 잠든 영혼을 깨우는 여린 ‘갈’바람, 이름 모를 들꽃만 흔들린다.
눈물의 사연들은 오래된 빛에 바래, 흔적조차 없고 우두커니 서있는 고목은 마구 잎을 피워내고 있었다. 귀향의 노래 부르며 새 한 마리가 가지에 앉아 시린 가슴의 노래를 전해준다. 한의 노래, 봄의 노래, 고택의 노래, 이 땅의 노래···.
나른하고 감동 없는 딱딱한 도시의 그림자를 말끔히 씻어 주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의 자유정신이 천년의 빗장을 열어준다.
걷는 내내 너는 ‘늙은 농부만 못하다’ 그렇게 고택이 알려주는 것 같다. 아픈 생을 임기응변으로 약삭 빠르게만 산 삶을 이제서 알만하다. 물 맑고 산 좋은 이 아름다운 고장은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 잊혀지고 있지만 ‘심심하고 한가로움’ 외엔 아무것도 없는 공백의 풍경은 아무리 뛰어난 문필가라도 필설로 묘사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
장가계나 명승고적의 절경은 그림이나 사진 등 기행문으로 묘사라도 가능하겠지만 ‘무형의 여백’을 무슨 재주로 천연한 유수 채색이나 글로 나타 낼 수 있단 말인가? 맑고 쓸쓸한 절제된 자신 안의 이는 여백바람이 근심걱정 놓게 하였으리라. 심호흡하며 먼 하늘을 쳐다볼 일이다.
청정한 솔바람 몸을 훑고 지나며, 버려라, 버려라 속삭인다. 고택의 여백 쓸쓸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