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봄의 전령 애탕쑥과 얼레지

애탕쑥(왼쪽)과 얼레지

이제 이 봄은 시작이다

입춘 무렵 버들강아지 몇 가지를 꺾어다 꽃병에 꽂으니 집안에 봄기운이 가득하다.

이런 때 양지 바른 곳에 애탕쑥은 조그맣게 싹이 올라온다. 이 애탕쑥을 뜯어다 국을 끓이면, 늘 집에서 같은 음식만 먹고, 밖에 나가 외식을 하는 것과는 달리, 색다른 감흥으로 봄을 맞게 된다.

애탕쑥은 말은 쑥이지만 일반 쑥과는 달리, 맛이 쓰지도 않고, 냄새도 순하다. 초봄, 땅이 기지개를 켤 무렵, 들에 나가 애탕쑥을 뜯으면 흙내와 쑥향이 은은하게 스민다. 아, 봄이로구나!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야지에서 철 따라, 피고 지던 다년초 애탕쑥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보송보송한 솜털을 피워냈다. 너네 들에게 못 당하겠구나. 새싹이 아직은 이른 봄빛에 떨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도 순하디 순할까? 봄두렁에 서니 다른 하늘이 얼린다.

은은한 애탕쑥국 참기름 한 방울 또르르????

우리는 그저 매일 습관적으로 똑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데, 봄향기 물씬한 요리를 직접 만들면, 한층 생활의 윤기가 더해진다.

조곤조곤 찾아드는 봄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애탕쑥 요리가 봄색을 알려준다. 영양 가치나 포만감을 따지기보다 싹트는 새봄의 향기를 머금고 가슴 설레는 작은 소꿉놀이가 더없이 평화롭다.

애탕쑥은 아예 어디서도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들에 나가 직접 뜯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눈밭을 뒤지고 양지바른 쪽을 찾아 다니다 보면, 깨끗한 모래언덕이나 개천가에 파랗게 군락을 이루며 돋아난다. 그것을 조심조심 하나씩 뜯어서 소쿠리에 담는다.

여린 애탕쑥을 곱게 다져야 하는데, 믹서로 갈면 손쉽긴 하겠으나 기계 작용이 배어, 봄향이 떨어지게 된다. 애탕쑥은 한 잎씩 손으로 다듬어 도마 위에 놓고 칼로 정성들여 다지는 동안 봄내가 마음을 웅성이게 한다. 애탕쑥국은 여느 국처럼 푸성귀를 듬뿍 넣는 것이 아니라, 향기가 은근히 배어날 정도로 조금만 넣는 요령이 중요하다.

다진 쇠고기에 다진 애탕쑥을 섞어 동그란 작은 완자를 만든다. 버들강아지 망울만한 완자를 만들어, 풀어놓은 계란 노른자에 잠깐 담갔다가 밀가루를 살짝 입힌다. 한겨울에 눈사람을 만들 듯이, 흰 밀가루에 완자를 또르르 굴려 하얀 옷을 입힌다.

한쪽에서는 노랑태 북어를 조그맣게 부셔서 밀가루와 계란에 버무려 딴 그릇에 담아두고, 소금만으로 간을 맞추어 물을 팔팔 끓인다. 간장이나 된장은 향이 강하기 때문에, 담백한 애탕쑥 맛을 내기 위해서는 소금 이외의 다른 조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애탕쑥 완자를 끓는 물에 넣고, 이어 하얗게 옷을 입힌 명태 북어를 팔팔 끓는 물속에 넣으면, 눈보라 치듯 춤을 춘다. 완자가 다 익을 즈음 파를 숭숭 썰어 넣고 살짝 끓여내면 된다.

애탕쑥 국이 다 되면 파란 풀잎이 새겨진 사기 그릇이나, 질그릇에 담아,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리면, 그 향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먹을거리를 위해서 만이 아니라 들에 나가 풋풋한 풀과 흙을 주무르면 자연의 은밀한 매력에 푹 빠져, 마냥 들판에 뒹굴고 싶게 된다.

자주 흔들리고 고생할 것… 삶은 변화이며 고역

봄이 찾아드는 지금은 애탕쑥이지만, 차차 온 산과 들은 온갖 나물과 들풀로 그 향기를 가득 채울 것이다. 얼레지나물이 제일 먼저 나오고, 다음으로 원추리, 이어 두릅, 나물취, 곰취, 참나물, 곤드레 등 갖가지 나물이 연이어 나온다.

나는 이 많은 나물 중에서도 ‘얼레지’ 꽃에 늘 마음이 아프다. 저렇게 여리고 예쁜 꽃이 왜 나물이 되었을까? 왜 사람들의 먹이가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슬프고 속상하다.

‘얼레지’는 나물이기 보다는 꽃으로 아름다우며, 해발 600m 이상의 높은 산의 토심이 깊은 비옥한 곳에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얼레지’는 모든 식물이 겨울잠에 잠겨, 싹을 틔우기도 전에 저네들끼리만 유독 외로운 꽃 군락을 이룬다. 산행 중에 이 꽃을 만나면 가장 긴 봄을 만나게 된 것처럼 그 언저리에 주저 앉고 만다.

이제 이 봄은 시작이다. 겨울의 끝자락이 아쉬워 대관령의 능경봉을 올랐다. 깊게 덮인 눈길에 푹푹 빠지며,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과 미리 온 봄길을 둥실둥실 오래 오래 갈치 걸음 쳤다.

계절의 냉혹한 순환 앞에 이 봄도 흔들리고 있었다. 겨울 끝자락의 매서운 추위와 이른 봄 샘의 맞바람이 뒤섞여 백두대간 연봉을 휘몰아쳐 사정없이 때린다.

흔들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참 이상한 일 아닌가? 우리는 자주 흔들리고 고생을 겪어야 한다. 흔들림과 고생은 즉 사유(思惟)니까! 사유는 창조의 근원이며 틀이다. 삶은 변화이며 일하는 고역이다.

나이 들수록 움츠리지 말고 ‘일’ 과 ‘걷기’로 결판내는 것이다. 죄인이듯 삶의 뜻을 헤아리며, 목마름과 굶주림과 또 험난한 앞길을 헤칠 먼 곳을 겨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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