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잊혀진 화전민을 찾아서⑤

충북 단양군 영춘면 화전체험 테마숩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된 화전민가 <사진제공=단양군>


‘현대판 화전민’ 그늘진 곳으로 밀려나 어두운 구석에서 신음

화전민들은 무슨 이유가 있어 산에 들어갔고 뭘 하고 살았을까?

옛날에는 관아의 수탈을 견디지 못해 그리고 지주들에게 농토를 빼앗기고 산속으로 도망쳐 화전민이 된 경우도 적지 않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개인의 능력 차이로 갈린다.

옛 속담에 선비 집안에 선비난다는 말처럼 집안 내력의 문화바탕 차이를 들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땅이 없으면 소작인이나 머슴살이로 전락해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 그 당시에는 산업화 초기여서 극소수 공부한 사람만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배운 사람은 드물고 인구는 나날이 늘고 농토는 한정됐기 때문에 농사인구가 넘쳐나 백수들만 늘어났다. 사회구조상으로 볼 때 직종의 수요공급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모순을 갖고 있었다. 즉 화전민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로 진입하는 격동기,?필요악의 산물이다.

사회경쟁에서 탈락해 먹고살 방도가 없어 고향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 산비탈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어 간신이 목숨만을 지탱했다. 그러나 화전민만의 불행했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날에도 사회변천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고, 있던 직업이 없어지고, 같은 직업끼리도 경쟁을 통해 죽느냐 사느냐하는 치열한 전쟁 속에 부침을 거듭하며, ‘현대판 화전민’이 넘쳐나고 있다. ‘도시의 화전민’은 도태되지 않고, 그늘진 곳으로 자꾸만 밀려나 어두운 구석에서 신음하고 있다.

보부상 문화유행 선도한?직업인··· 기자와 우체부 역할도

화전민시대에 파생한 직종으로 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개화기를 전후해 보부상(褓負商)이란 직종이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풍악행상도 있고 봇짐상, 광주리장사, 닭장 행상, 독 장사, 환쟁이 놀이꾼, 금니를 야매로 하는 얼치기 치과의사 등도 있었다.

이런 장사치들은 지금은 우스갯거리로 보이지만, 그 시대에는 문화유행을 선도하는 앞서가는 직업인인 동시에 한편으론 봉건사회 신분제도 때문에 비천한 장사꾼으로 취급받는 수모를 견뎌내야 했다. 통 큰 보부상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장거리와 큰 고개를 넘나다니는, 요즘으로 치면 등산의 프로였다.

보부상이란 ‘봇짐장사’와 ‘등짐장사’를 합해서 이르는 말이다. 무게와 부피가 크고 값이 싼 상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장사를 ‘부(負)상’이라고 불렀다.?취급품목은 소금, 무쇠그릇, 어물, 미역, 토기, 목물(木物), 누룩, 담배, 죽물(竹物), 돗자리, 삼(麻), 꿀 등이다.

‘보(褓)상’은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값이 비교적 비싼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장사를 말한다.?취급상품은 포(布), 면(綿), 릉(綾), 백(帛), 지물(紙物), 돈피(豚皮), 수달피(水獺皮), 면화, 피혁, 삼(蔘), 금, 은, 동 등이다.

보부상인들은 주로 농촌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했지만 고을과 고을의 영(嶺)을 넘나다니며 고행의 장사를 했던 통 큰 상인을 진짜 보부상인이라고 부른다. 그네들은 주막집에서 숙식을 하고 산적(山賊)의 습격을 대비해 집단으로 고개를 넘어 다녔는데, 지게꾼도 있고 당나귀에 짐을 실기도 하여 이동했다. 요즘 TV에서 보이는 실크로드 상인을 연상하게 한다.

그 당시에는 그네들이 본래 목적인 장사를 하면서, 요즘으로 말하면 신문기자 격으로 뉴스를 전파하고, 한편으로는 좁은 뜻의 우체국 역할도 해냈다.?물류의 소통과 세상의 소문을 퍼트리는 일을 보부상인들이 하고 다닌 것이다.

구룡령 옛길, 죽령, 문경새재, 함백령, 삽달령 등 예전의 보부상인이나 소 장사꾼들이 넘어 다녔던 고개에 들면, 그네들이 영을 넘은 안도감에 야단법석 떨며 한숨 돌려 쉬는 장면이 뒤통수에 그려진다.

한편 갈 길이 아득한 운명의 길을 한탄하며 욕사발 타령을 처량하게 내뽑아 요지경세상을 조롱하는 탄식이 출렁이는 듯 상상된다.

나는 보부상인이 넘나들던 고개를 걸으면 가슴이 메이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 애잔한 마음에 곤죽이 된다. 그 길은 기막히게 불쌍한 길이였다. 낙엽이 마지막 져가는 만추에는 더 그러하다.

잘사는 것 좋지, 그러나 더 잘 살려면 깨져야 한다. ‘화전민’ ‘보부상’의 처방전으로 자연에 파고들고 사회 속에 부딪쳐 깨지고 일어서 싸운다. 마음치료가 아니라 문제를 만들어 깨져야 한다. 마음이 아니라 행동이다.

인생은 너무나 짧다. 지금 너무 바쁘게 달리고 있는 사람들. 더 늦기 전에 ‘화전민의 처절한 고생’을, 더 늦기 전에 ‘보부상의 모험의 개척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젊어 건강할 때 모험을 안 하고 깨지지 않은 후회이다.

‘화전민’과 ‘보부상’ 앞에서 깨달은 인생의 의미를 사변적 관념으로만 이해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네들이 겪었던 알알이 고난의 피와?얼룩진 땀을 우리 개개인이 직접 밟고 누워,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자신을 깨부수고 고생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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