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마라톤, 실존의 처절한 드라마
삶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마라톤을 거울삼아 생각해본다.
마라톤. 낯설고 생소하고 두렵다. 42.195km는 상상할 수 없는 지옥이다. 접근할 수 없고 주눅 들게 하는 딴 세상 이야기다. 직접 뛴 체험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뛴 사람만이 알 뿐이다.
마라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기학대를 스스로 만들어 하는 운동이다. 이 본질은 극한 상황에서 마주친 인간 실존의 처절한 드라마다. 땀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몸부림이다. 삶의 저항이고 수용이다. 불가능에 도전하고 무상의 가치를 흡족하게 받아들이는 인간정신의 고귀한 승화이다.
마라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노동이고, 고독이고, 고문이다.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를 보라. 바위를 붙잡고 나무는 운다. 뿌리가 부여잡은 목마름, 비바람에 혈혈단신 벌거벗고 맞선다.
죽기 살기로 뛰는 골통은 이 세상을 다 싸잡은 고독을 먹는다. 모든 고통의 신음을 토한다. 마라톤은 분초와의 사투이다. 끝없이 지루하게 달리며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자신을 본다.
마라토너는 정신·육체의 한계를 넘어 긍정·부정을 융합한다. 뛸 때, 한 점으로 생각이 모이고, 극한에 다다라 무아마저 버린다. 극한상황으로 내몰아 ‘스스로 그러함(自然)의 순리’를 깨닫는다.
결국 사유하는 마라토너는 곧 괴짜이고 철학자다. 그저 달린다. 홀로의 뒷모습이 어찌 그리도 청아한가.
하나의 아름다움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의 고통과 하나의 고독도 함께 있어야 한다고 믿고 달리는 사람들. 마라토너는 세상을 냉철하게 꿰뚫어보는 냉정한 합리주의자이다.
외로움은 인간의 숙명이다.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남과 같이 있으려 한다. 고독과 외로움의 증후군에서 벗어나자. 오히려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더 좋은 고독으로 도약하자. 혼자 있는 고통을, 혼자 있는 즐거움으로 치유 받는 훈련기법을 일상화하자. 마라토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