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깡패 기질의 대통령들…김영삼·노무현과 윤석열은?
윤석열 대통령이 명태균이란 선거판 꾼의 폭로에 휘둘리면서 고전하는 것 같다. 성공보수가 적거나 기대가 클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정적과 야당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이따금 뉴스 영상에는 그에게 한을 품은 야당 대표의 독기 서린 시퍼런 얼굴이 나타나기도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선동된 군중들이 광장으로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하는 것 같다. 위기가 눈사태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대통령은 위기의 조짐을 느낄까 아니면 어항 속의 금붕어같이 평화로울까.
내가 아는 한 원로 정치인은 역사는 엘리트와 카운터 엘리트의 권력을 빼앗으려는 싸움이라고 했다. 선악과 정·부정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광우병을 정치문제화해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진보세력의 역공이 한창일 때였다. 광장으로 가보았다. 군중을 이끄는 지도부는 백만명만 모으면 정권을 엎을 수 있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서 붉은 촛불의 물결을 보고 겁을 먹었다고 했다. 당시 나는 정권의 고소대리인이었다. 용병의 일종이었다고 할까. 샐러리맨 출신 대통령은 투사기질이 없어 보였다. 자존감도 약해 보였다. 몰려오는 군중 앞에 맞서서 그게 아니라고 하는 장관들을 볼 수 없었다. 정권은 의외로 허약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세월호 사건이 정치화했다. 여성 대통령과 관련된 더러운 유언비어가 돌고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틀어박혀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선동된 군중들이 청와대까지 접근했다. 대통령이 파면됐다. 법정에서도 대통령은 무기력했다. 그게 어떤 성격의 재판이든 대통령은 말을 남기고 기록으로 역사와 싸워야 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 뇌물 사건의 돈을 줬다는 이병호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하면서 박근혜 대통령 수사 기록을 샅샅이 읽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록으로 싸워야 하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사례를 알려주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란 음모사건으로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고 있을 때 나는 법무장교였다. 조사받는 김대중 대통령은 군검사 앞에서 양 같은 모습이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밥풀 하나 없이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그러나 기록을 작성할 때는 전혀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조서 말미에 민주화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예언을 했다. 세월이 흘러 이 땅에 민주화가 왔을 때 그의 최후진술은 그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했다. 그는 전체 기록의 오탈자까지 체크했다. 그가 재판에서 남긴 기록은 성경의 예언서 같았다.
그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의 조서는 검사의 일방적인 작품이었다. 여백과 행간에서도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찾을 수 없었다.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 진술을 글로 보내달라는 나의 의견을 보냈었다.
고교후배인 메이저 신문의 주필과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그가 직접 대했던 대통령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깡패 기질을 가지고 있어요. 군중에게 둘러싸이거나 폭력배에게 협박을 당해도 끄떡도 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정치인들이 어정쩡하게 엉겨 붙으면 바로 밟아 버리죠. 반면에 이회창은 문약한 면이 있었어요. 한번 군중에게 둘러싸여 봉변을 당할뻔한 적이 있죠. 한 대 맞으면 될텐데 도망을 쳤죠. 그러면 안돼요. 당해야 합니다. 예전에 정원식 총리가 외국어 대학교에 가서 밀가루를 뒤집어쓰니까 단칼에 문제가 해결됐었죠. 그런 걸 보여줘야 해요.”
그 말을 들으니까 조폭 두목이던 김태촌이 살아있을 때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가 건달들을 모아 신민당 당사에 난입했을 때였다고 했다. 당사에 있던 사람들이 질겁을 하고 다 도망쳤다. 그는 계단을 따라 윗층의 총재실로 올라갔다. 총재실의 문이 닫겨 있었다. 그는 들고 있던 도끼로 문짝을 찍어 넘어뜨렸다. 김영삼 총재가 방안 의자에 똑바로 앉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의외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가 다가가 도끼를 쳐들었다. 김영삼 총재가 그를 보면서 내뱉었다.
“까라”
그는 순간 당황했다고 했다. 순간 누군가 김영삼 총재의 몸을 감싸면서 함께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당사 옆에 있는 집의 슬레이트 지붕에 두 사람이 떨어져 절뚝거리면서 가는 뒷모습을 보고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내게 말했었다. 대통령은 그 정도 배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 항복하지 않고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버린 것도 비슷한 기질이 아닐까.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기질일까.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상관이었던 분이 나에게 윤 대통령은 조폭보스 기질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오지 않았으면 조폭의 보스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당한 민주 절차에 의해 당선된 대통령이 임기를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다. 여론보다 원칙에 끝까지 충실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