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고 심재덕 국회의원 “국감장 화장실이 더럽다”고 닥달…한국의 ‘화장실문화’ 견인

‘미스터 토일릿(Mr. Toilet)’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화장실 문화운동에 열정을 쏟아온 심재덕 전 국회의원. 2009년 1월 14일 오후 1시45분 70세에 일찍 세상을 뜬 심재덕 의원은 1996년 화장실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1999년 사단법인 한국화장실협회를 창립하고 2007년에는 세계화장실협회를 발족시켜 초대 회장을 맡았다. 

국회방송에서 심하게 싸우는 위원회 장면이 자주 나온다. 눈이 부리부리한 법사위원장이 불려온 공무원을 보고 소리쳤다.

“씨X이라고 했죠? 그건 국민을 모독하는 겁니다”
“그건 정회 시간에 나 혼자 한 겁니다.”

소환된 공무원이 맞받아쳤다. 국회의원들이 공무원을 향해 각자 언성을 높이고 삿대질을 했다. 허공에서 말과 말이 뒤엉키고 말끝이 잡아 뜯기기도 했다. 국회가 원래 싸우라고 판을 깔아준 곳이기는 하지만 싸움의 품위가 없었다. 공무원들을 불러 국회의원들이 조리돌림을 하는데 공무원들도 더 이상 을의 입장이 아닌 것 같다.

좋은 국회의원은 어떤 사람일까. 임기 동안 법률조항 몇개라도 잘 만들어서 편한 세상이 되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예산 담당이던 공무원인 고교동기가 국회를 불려다니다가 보석같은 국회의원을 두 명 봤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국회의원 중에 국정감사를 가서도 먼저 그 기관의 화장실부터 둘러보고 감사장에서 화장실이 뭐 이러냐고 시비 거는 의원이 있었어. 그런 행동을 보고 왜 저렇게 쫀쫀하게구나? 하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었지. 그 국회의원은 화장실만 파고 들었어. 화장실법을 만들고 화장실협회를 만들었지. 세계 화장실 협회 총회를 만들고 서울에서 개최했어. 그 국회의원 덕분에 더럽던 전국의 화장실이 세계 최고수준의 깨끗한 시설이 됐어. 그걸 보면서 내 생각이 달라졌어. 국회의원은 그렇게 해야 돼.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고 공허한 헛소리 하지 말고 법 조항 몇 개라도 잘 만들어 세상이 편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국회의원에 대한 나의 기존관념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의회에 나갔다면 어떤 이념이나 가치를 추구해야 맞는 게 아닌가 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 있었다. “자전거법을 발의한 의원이 있어. 그 의원이 전국에 자전거도로를 놓자고 했어. 다른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은 산지가 많아서 자전거도로가 적합하지 않다면서 반대를 했지. 그 의원은 자전거도로가 잘 되어 있는 일본을 연구하고 하나하나 근거를 대면서 설득했지. 그리고 다른 의원들에게 자기가 지리학과 출신이니까 맡겨달라고 부탁했지. 그렇게 법이 통과됐어. 4대강 개발사업이 되면서 자전거법 덕에 사람들이 싸이클을 타고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가 된거야.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 법조항 하나만 잘 만들어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는 걸 봤지. 국회의원은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거창한 담론을 얘기할 게 아니라 국민의 생활을 돌보는 살림꾼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시대정신이 아닐까.

봉건국가에서는 왕의 명령으로 모든 정치를 했다. 민주국가에서는 국회의원들이 만드는 법률이 왕명을 대신하고 있다. 의원의 존재와 그들이 만드는 법률이 없으면 세금을 부과할 수도 사람을 체포해서도 안되는 데서 민주주의가 출발했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가진 입법권의 가치를 어떻게 여길까.

변호사인 나는 젊은 시절 정부의 공무원으로 법률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장인이 작품을 만들듯 법을 만드는 것도 정교한 작업이었다. 현장의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논문들과 외국의 입법례들을 공부했다. 장단점과 예상되는 문제점을 연구했다. 법 문장의 전문가인 법제처 공무원과 함께 법 조문 하나하나를 토씨까지 살펴야 했다. 입법안을 완성해서 국회에 납품했을 때였다. 정부 입법은 절차가 복잡해 의원 입법의 방법을 택했다. 일정 수의 의원들이 발의하는 형식이었다. 도장값을 내라는 연락이 왔다. 의원마다 입법 발의에 이름을 집어넣는 댓가를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국회의원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상임위원회의 국회의원이 개별적으로 설명을 듣겠다면서 조찬모임에 책임자가 나오라고 했다. 내가 그 자리에 나갔다. 내가 법안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자 참석했던 국회의원들이 뭔가 예상과 다르다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다.

“이거 뭐야? 장관이나 최소한 차관은 나올 줄 알았더니 30대 변호사가 나온 거야?”

그 자리에 있던 위원회의 간사라는 국회의원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보쇼. 이 아침에 우리가 죽 한 그릇 먹고 따분한 법 공부하려고 나온 줄 알아? 다른 걸로 먹을 게 있어야 하잖아? 그게 핵심이잖아?” 돈을 달라는 소리였다. 내가 젊은 날 마주친 국회의 모습이었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돈이 법을 만드는 세상이었다.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도장도 찍지 않고 서류도 들춰보지 않는 국회의원들이었다. 통과될 법도 보류시켰다. 그런 풍토 속에서 생활에 필요한 작은 법 하나라도 만들어 보려는 의원은 현대의 영웅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법의 무서움을 모른다. 의원 몇 명이 작당해서 세율을 정하는 규정 하나를 슬쩍 바꾸면 전 국민이 탈세범이 될 수 있다. 법을 만들어 친일문제나 5.18에 관한 국민의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사회주의로 바꿀 수도 있다.

이 시대의 깨어있는 국민들은 밀과 가라지를 잘 구별해서 선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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