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흑백요리사’…눈빛이 운명을 만든다

흑백요리사 포스터

요즈음 인기인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다. 경쟁을 벌이는 백 명의 요리사 중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마치 양들 사이에 숨어서 끼어있는 들개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치뜨는 눈길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뒷골목 깡패가 조리사가 됐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 그가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 결승전 가까이 갔다.

마지막에 그가 심사위원 앞에 요리를 놓았을 때였다. 뒤에는 그의 사나운 눈빛을 담은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마치 격투 직전의 권투선수 같은 눈빛이었다. 심사를 앞둔 그의 입에서 갑자기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저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깡패가 아니란 말이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다 내 눈빛을 보고 경계해요.”

그의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것 같았다. 그는 눈길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손해를 많이 본 것 같았다. 심사위원인 백종원씨가 그를 받아들이는 푸근한 눈빛을 보내며 위로했다.

“지금 그렇게 보이지 않네요. 그런데 저 뒤에 있는 영상을 보면 정말 눈빛이 무섭긴 무섭네”

살아오면서 눈길 때문에 나도 많은 손해를 보아왔다. 중학교 시절 같은 학교에 재벌 회장의 아들이 있었다. 그 아이의 초대로 재벌 집을 간 적이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인 회장 부인에게 인사를 할 때였다. “그 놈 눈이 부리부리한 게 나중에 눈값 하겠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20대 중반경 나는 육군 중위로 수도군단 사령부에서 근무했다. 어느 날 장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문 앞에 대령 계급장을 단 사람이 서서 위압적인 눈길로 초급장교들을 보고 있었다. 레이저 같은 그의 눈길을 받은 장교들이 주눅이 들어 슬금슬금 피해가고 있었다. 그 대령과 눈길이 마주쳤다. 본능적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 보았다. 그의 눈이 ‘어 이놈 봐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어디 두고보자’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사령부의 군기를 잡는 인사참모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사령부 내의 전체 장교가 전투 복장을 하고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나 때문에 전체 장교들이 억울하게 기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오후였다. 사령부 구석 후미진 바라크 건물 뒤쪽에서 우연히 그와 둘이 마주쳤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 보았다. 특별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순간 얼른 자리를 피해 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에게 경례를 할 기회를 놓쳤다. 세월이 흐르고 나는 제대를 하고 그는 장군이 됐다. 그가 나의 소식을 묻는다는 말이 전해왔다. 그 장군에게 나는 “그 눈이 부리부리한 장교”였다.

시간을 그 시절로 다시 돌린다. 나는 그 다음은 최전방 사단으로 명령이 났었다. 대령인 참모장에게 전입 신고를 하는 순간이었다. 눈길과 눈길이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에 ‘어? 이놈 봐라’ 하면서 불쾌감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의 눈길이 그의 내면에 있는 뭔가를 찌른 것 같았다. 바로 반응이 왔다. 그는 내가 묵을 장교관사를 가장 나쁜 곳으로 배정해 주었다. 내가 타는 군용차량의 운행을 정지시키기도 했다. 나도 그가 싫어졌다. 그는 사람을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둘로만 분류하는 것 같았다.

한번은 회식 자리를 만들고 측근 부하들을 불러모았다. 대부분이 중령들이었다. 대위로 진급한 나는 그 말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폭탄주를 마시게 한 후 기합을 가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한 후 한 명 한 명 주먹으로 배를 가격했다. 조폭 사회같이 한방에 나가떨어져 줘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맞을 이유가 없었다. 그를 정면으로 한번 노려보고 자리를 나왔다. 나는 계급과 원색적인 힘으로 누르는 사회가 싫었다. 조금 더 나를 건드리면 영창에 가더라도 저항할 생각이었다. 그 사회에서 따돌림과 미움을 몸으로 때우는 수 밖에 없었다.

30대 중반 잠시 정보기관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부서에 가서 상관이 될지도 모르는 부장검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눈빛이 강한 사람이었다. 섬짓한 눈길로 나를 제압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심히 그 눈을 맞받았다. 그날 저녁 조직의 사람들과 회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부장검사는 정보기관 요원에게 나를 때려주라고 했다. 농담같이 지나치는 말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그는 거리를 두고 나를 경계했다. 나는 내 속의 무엇이 그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겁 많고 약한 인간이다. 그러다가도 계급이나 힘으로 누가 나를 짓누르려고 하면 용수철 같이 튀는 성격을 가진 것 같다. 주위에서는 그걸 반골 기질이라고 했다. 그런 마음이 눈이라는 창을 통해 상대방에게 보여진 것 같았다. 아내는 좋은 사람을 만날 때와 교만한 사람을 만날 때 나의 눈은 전혀 다르다고 했다. 성격이 그리고 눈빛이 운명을 만든다.

나는 일찍 내 주제를 알았다. 나 홀로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교만한 권력과 싸워왔다. 방송에 나오는 눈빛이 날카로운 셰프가 프로그램이 끝난 후 인터뷰하는 장면을 봤다. 초등학교 시절 시장에서 냉면 장사를 하던 엄마가 아픈 바람에 음식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조리사 자격증을 네 개나 땄다고 했다. 그는 자기에게는 ‘쉐프’라는 호칭이 적절치 않고 그냥 ‘안주꾼’정도로 불러달라고 했다. 혼자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방송에서 보는 그의 눈빛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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