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돈과 여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의 변호사 일지 안에서는 시궁창과 정액의 냄새가 번져 나오는 것 같다. 범죄도 그 배경은 돈과 치정문제였다. 불을 다루는 사람이 화상을 입듯 변호사는 어느 순간 돈과 욕정의 불 곁에 있다가 타 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의뢰인 여성과 불륜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지옥으로 가는 것도 보았고, 보관한 돈을 썼다가 감옥으로 가는 경우도 봤다.(본문에서) 

변호사 생활을 40년 가까이 하면서 내가 매일 대했던 일이 뭐였을까. 돈을 놓고 하는 진흙탕의 개싸움을 대리하는 일이었다. 부모 형제나 부부들끼리 이빨 드러내고 물고 뜯는 그 어느 한 편에서 같이 싸웠다.

싸움의 본질은 돈욕심이었다. 상속에 불만을 품은 아들이 죽은 아버지의 무덤에 가서 불을 지르는 걸 보기도 했다. 끝 간 데 없는 인간의 탐욕에 어떤 때는 토할 것 같을 때도 있었다. 그 다음 평생 접했던 일은 불륜관계였다. 많은 이혼소송을 대리했다. 그 어떤 소송이나 본질은 거의 불륜이었다. 법적으로는 일부일처 주의이지만 그건 위선인 것 같았다. 일부다처 주의였고 음란한 여성의 경우는 남편이 한 두명이 아닌 것 같이 느낄 때도 있었다. 변호사 생활의 많은 시간을 포르노 같은 얘기를 듣고 그걸 수첩에 적어 놓아야 했다. 법은 그런 장면들을 리얼하게 묘사해서 재판정에 올려놓으라고 주문하기 때문이다.

나의 변호사 일지 안에서는 시궁창과 정액의 냄새가 번져 나오는 것 같다. 범죄도 그 배경은 돈과 치정문제였다. 불을 다루는 사람이 화상을 입듯 변호사는 어느 순간 돈과 욕정의 불 곁에 있다가 타 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의뢰인 여성과 불륜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지옥으로 가는 것도 보았고, 보관한 돈을 썼다가 감옥으로 가는 경우도 봤다.

변호사를 하다가 잠시 정보기관으로 들어가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곳은 색다른 국가적 업무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깜짝 놀랐던 일은 사회지도층들의 돈 문제와 불륜이 기록된 파일들을 보고 나서였다. 그 무렵 인기가 높던 시사평론가가 있었다. 정보기관 내부에는 그의 축첩 관계를 그린 가계도 같은 도표가 있었다. 그와 불륜관계인 여자들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가 불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만드는 과정이 치밀하게 조사되어 있었다. 그런 약점이 잡혀있으면 도저히 자유롭지가 못할 것 같았다.

돈 문제와 불륜은 짝을 이루면서 사회 전반에 구름같이 덮여 있었다. 대법관이 여비서들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여성과의 불륜은 그들 사이의 시기와 암투를 유발했다. 그런 사실이 언론에 노출될 위험이 생기자 정보기관은 그 대법관을 조용히 찾아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일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런 약점을 이용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대법관은 단호히 거절할 수 있을까.

돈과 여자 문제에서 흠이 없어야 이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배운 셈이다. 약점이 없어야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고 권력과도 당당히 맞설 수 있다

내가 존경하는 도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자는 돈 문제, 남녀 문제를 아는 게 도(道)라고 했지. 돈 문제하고 남녀 문제를 깨달으면 그게 진리를 아는 거요. 공자가 말하는 수신(修身)이라는 게 그런 거지. 진리가 별 게 아니요.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성(性)이 뭔지 알면 그게 부처야. 견성성불이라는 게 그 소리야.”

유불선과 기독교에 도통한 그 노인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악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있어요. 금전욕이나 성욕도 내 속에 있는 악마요. 하나님하고 나하고 사이를 막는 담벼락이지. 그게 깨져나가야 해요. 그걸 짓밟아 버리지 않으면 그리스도가 오지 않아요. 예수는 자기 속에 있는 악마를 이긴 분이지. 나는 세상을 이겼노라 하는 그 속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어요.”

도인은 내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렇게 알려주었다.
“늙었다고 파고다공원에 가서 멍하게 앉아 있을 일이 아니예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공자는 일흔두살에 죽으면서 내가 3년만 더 살면 공부를 더하고 배우면서 진리를 깨달을 텐데 했어요. 주자는 죽기 이틀 전까지 가르쳤다고 해요. 일체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는 자유인이 되어야 해요. 그게 생명인 거지.”

길거리의 비둘기는 바닥의 먹이를 찾아다니고 짝을 짓는 게 하는 일의 전부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보면 바닷가의 갈매기도 부두의 썩은 고기나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를 먹고 짝을 짓는 게 일생이다. 갈매기 조나단은 그게 싫어서 공중을 높이 나는 연습을 했다. 좀더 멀리 넓게 보고 싶어서. 인간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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