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박근혜 대통령이 받은 ‘국정원 돈’ 뇌물 아니다”

재판정에 들어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뇌물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 나는 변호인이었다. 나는 다른 정부기관의 예산이 청와대로 전용된 것이 뇌물이 아님을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담당 재판장에게 정말 바르게 재판을 하라고 경고했다. 정치적인 재판에 대해 나중에 그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을 뒤흔들었던 살인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람이 복역 50년만의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여든여덟 살에 그는 자유를 찾았다. 법원은 피묻은 그의 옷과 자백을 근거로 유죄판결을 내렸었다. 수사관들의 증거 조작과 고문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허망할까. 빼앗긴 인생을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사십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나는 사실을 왜곡시키는 그런 고문과 증거 조작을 많이 봤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지도록 얻어맞은 고문들을 법정에서 고발했다. 고문만 허용하면 어떤 범인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늙은 형사의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판사들은 고문을 보고 듣고도 외면했다.

일본 형사의 증거조작 못지 않은 게 우리의 과거이기도 했다. 노련한 형사가 자랑하듯 내게 한 이런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살인사건에서 증거가 없는 경우 용의자의 머리카락 한 올을 사건현장에 가져다 놓으면 돼요. 그걸 발견했다고 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는 거죠. 그 감정서를 부정할 판사는 없죠. 판사는 서류에는 꼼짝 못하니까.”

형사사건에서 증거가 조작되는 경우였다.

민사사건도 조작이 심한 경우가 있었다. 한이 서린 변호사가 내게 와 자기가 당한 억울한 경우를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알리겠다고 한 적이 있다. 대충의 내용은 이랬다.

개발업자에게 집을 팔지 않고 버틴 노인이 있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이었다. 그 노인의 고집을 꺾지 못한 개발업자는 최첨단 전자기구를 이용해서 매매계약서를 위조했다. 서명 부분은 전문가도 식별하기 힘들 만큼 정교했다. 개발업자는 법원장으로 있다가 막 옷을 벗은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서 그 땅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맡겼다. 담당 재판부는 매매계약서가 진정으로 성립됐다는 전관 변호사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 집을 개발업자에게 인도하도록 명령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집을 빼앗긴 그 노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2년 전 내가 실버타운에 있을 때 도서실의 구석에서 노인의 소송을 대리했던 변호사가 그 억울한 사연을 쓴 책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래도 그 판결은 판사가 현대의 정교한 디지털기술로 만든 위조문서에 속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너무도 명확한 사실을 부인당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한 의사의 사생아가 아버지를 상대로 아들인 것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혈액검사를 통해 그가 아들인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그러나 법원 판결이유는 이상했다. 과학적 검사 결과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아닌 것으로 판결을 한다는 것이었다. 법원이 백을 흑이라고 선언한 판결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랬을 것이라고 선의로 해석해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미심쩍었다. 아들을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법원의 권위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판사는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것일까. 사생아인 그 의사의 아들을 만나보았다. 반듯하게 자란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도 아버지 같이 의사가 됐으면 아들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고 울부짖었다. 법원이라고 하면 국민들이 일단 기가 죽었다. 그리고 그 결정들을 믿었다. 그런 속에서 진실은 깊이 묻혀버린 경우들이 있었다.

정치적 모략을 눈감아 주는 판결들도 참 많았다. 나와 친했던 소설가는 정부의 어두운 부분을 취재해서 소설로 썼다. 어느 날 그는 문인 간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심한 고문을 당하고 증거조작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40년만에 재심이 이루어졌고 무죄가 선고됐다. 그리고 민주화운동가라는 통보서를 받았다. 그는 내게 그 통보서를 보여주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었다.

서울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뇌물사건을 다루는 법정에서 나는 변호인이었다. 나는 다른 정부기관의 예산이 청와대로 전용된 것이 뇌물이 아님을 지금도 확신한다. 나는 담당 재판장에게 정말 바르게 재판을 하라고 경고했다. 정치적인 재판에 대해 나중에 그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정치재판에 호응하는 판사나 검사는 사법왜곡죄로 처벌한다는 법 제도를 얘기했다. 그동안 판검사들이 치외법권으로 안이하게 특권을 누리며 살아왔다. 특권이 없어야 민주사회다. 잘못 했으면 책임을 져야 법치주의다. 검사나 판사의 책임을 묻는 법안이 국회에서 거론되고 있다.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좋은 법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