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길고양이들의 안식처 ‘포구식당’

포구 식당 부부는 포구 근처를 방황하는 길고양이들에게 천사같은 존재다. 고양이들이 다치거나 배가 고프면 그 식당 앞에 줄을 섰다. 주인 여자는 다친 고양이에게 약을 발라주기도 하고 남은 음식들을 배고픈 고양이에게 먹여주었다. 길고양이에게 매상을 올리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곳곳에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부부의 넉넉한 마음에 감사를 느꼈다. 

어제(9월 21일) 이곳 동해엔 가을을 예고하는 비가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렸다. 바다가 보이는 유리창에 가득 매달린 물방울들이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다. 흥건하게 물에 젖은 해안로를 이따금씩 차들이 달리고 있다. 방안에는 잔잔하고 묵직한 첼로 연주가 너울을 일으키면서 퍼지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고즈넉하고 평안한 느낌이 든다. 바닷가에 와서 산 지 벌써 3년 반이 됐다. 주변에 좋은 이웃들이 생겨나고 있다.

며칠 전 손자가 딸과 함께 왔을 때였다. 갑자기 포구 옆의 작은 식당 주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잿방어가 들어왔는데 빨리 오세요.”

어부들이 자연산 좋은 횟감을 포구에 들여온 모양이다. 포구 식당 주인은 어부들이 청어를 잡아 오는 날도 연락을 했다. 장삿속으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 좋은 물고기가 들어온 걸 내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가족과 함께 포구 식당으로 갔다. 구석의 탁자 위에 윤기가 흐르는 생선회가 먹음직스럽게 접시에 담겨 있었다.

딸이 젓가락으로 회 조각 한 점을 집어 간장을 살짝 찍어 입속에 넣었다. 우물우물 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 “음, 살아있는 고소한 맛이고 쫄깃쫄깃하네.”

엄마 옆에서 같이 먹던 손자가 말했다. “할아버지 식감이 좋으네요.”

녀석이 식감이라는 단어를 알고 말하는지 의아했다. 논술학원에 간다고 하더니 국어 실력이 늘어난 것 같았다. 훈훈한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포구식당이다.

3년 전 바닷가 실버타운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울에서 친구가 저녁 무렵 찾아왔다. 어둠이 내리자 친구와 나는 밥을 사먹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 친구는 맛집에 예민한 편이었다. 차를 몰고 바닷가 작은 포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폈다. 그는 포구 근처의 작고 허름한 식당을 보더니 저 집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자기의 촉이 그렇게 알려준다는 것이었다. 탁자가 서너 개 놓여있는 작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친구와 회 한 접시와 매운탕을 시키고 맥주 두 병을 곁들여 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밤 9시가 넘었다. 돌아가려고 하니까 우리보다는 한참 어려보이는 식당 주인이 깜깜한 밤중에 술 드시고 운전하면 안된다면서 자기 차로 모셔다 드린다고 했다. 우리가 타고 온 차는 내일 와서 가져가면 된다고 했다. 우리는 칠흑같은 밤에 식당주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산골짜기에 있는 실버타운으로 갔었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웠다. 도시에 살던 그는 외환위기 때 쫄딱 망했다고 했다. 아내와 하루에 김밥 한줄 사먹으면서 빚을 갚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동해 바닷가로 와서 작은 식당을 차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식당을 자주 찾아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회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도 혀가 길들여져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 어쩌다 특식은 간장에 졸인 꽁치였다. 아니면 소금 덩어리인 생선 자반이었다. 나는 그 맛에 길들여졌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처음으로 나무껍질로 된 도시락 속에 들어있는 생선 초밥을 본 적이 있다. 어른들이 그걸 보고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저렇게 귀한 걸”이라고 말하며 입맛을 다셨다. 생선 초밥은 특별한 사람들만 먹는 귀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후에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일식집에서 회를 먹을 일이 생겼다. 길이 들지 않은 혀를 가지고 있던 나는 생선회가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걸 먹으면 뱃속에 어항이 들어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식당 주인은 내가 별로 회를 즐기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그래도 바닷가 그 횟집으로 안내해야 했다. 주인은 나를 위해서 메뉴에도 없는 생선 초밥을 특별히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팁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매상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다.

포구 식당 부부는 포구 근처를 방황하는 길고양이들에게 천사같은 존재다. 고양이들이 다치거나 배가 고프면 그 식당 앞에 줄을 섰다. 주인 여자는 다친 고양이에게 약을 발라주기도 하고 남은 음식들을 배고픈 고양이에게 먹여주었다. 길고양이에게 매상을 올리기 위해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곳곳에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부부의 넉넉한 마음에 감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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