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작지만 따뜻한 시골교회

“요즈음 시골은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에 교회도 텅텅 빕니다. 노인들은 죽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목사들의 사역하는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 젊은 목사가 농촌마을로 갔습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밭일을 해줬어요. 마을 노인들이 병이 나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군청에 일이 있으면 대신 가서 일해주기도 하고 말이죠. 마을의 모든 민원은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마을의 이장을 하라고 그러더래요.” (본문 가운데)

인천에서 뱃길로 한 시간 떨어져 있는 육도라는 작은 섬에 간 적이 있다. 몇 가구 안 되는 주민이 살고 있는 그곳에도 작은 시골교회가 있었다. 일요일 저녁 예배 시간이었다.

예배당으로 갔다. 얇은 유리가 끼어진 알미늄 샷슈 문 앞콘크리트 바닥에 비닐 슬리퍼 세 개가 놓여있었다. 조심스럽에 문을 열었다. 나이 든 할머니 세 분 앞에서 나이 지긋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몇십만 군중 앞에서 하는 설교보다 내게는 그 모습이 더 감동적이었다. 외딴 섬시골 목사의 그 자리는 명예도 돈도 지위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그 목사는 거기서 일생을 보냈다.

나와 친한 운동권 출신이라는 목사가 있다. 그가 인터넷 언론을 만들어 대형교회 목사의 부패와 교만을 글로 썼다가 재판에 회부 됐을 때 내가 변호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나의 변호를 거절했었다. 돈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료 변호를 받기도 싫다고 했다. 개결한 자존심을 가진 목사였다. 그때 그가 한 이런 말이 지금도 나의 일기장에 남아있다.

“요즈음 시골은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기 때문에 교회도 텅텅 빕니다. 노인들은 죽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가기 때문이죠. 그래서 목사들의 사역하는 모습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 젊은 목사가 농촌마을로 갔습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밭일을 해줬어요. 마을 노인들이 병이 나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고 군청에 일이 있으면 대신 가서 일해주기도 하고 말이죠. 마을의 모든 민원은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마을의 이장을 하라고 그러더래요. 이장 겸 목사를 하게 된 거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까 마을 사람들이 먼저 자기들을 왜 교회로 부르지 않느냐고 하더래요. 그게 요즈음 시골에 새로 생기는 따뜻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전에 폼잡고 기도하고 설교하는 목사와는 다른거죠. 그런게 성공 사례가 아닐까요?”

그 역시 비슷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목사부부는 서울 근교의 농촌에서 감나무를 심고 농사를 지었다. 그의 아내는 알바를 하기 위해 틈틈이 마트로 가서 소리치며 장사를 돕는다고 했다. 스스로 노동을 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진리를 전하는 모습이 괜찮은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영등포 공장지대에서 운동권 목사로 출발했어요. 그 계통의 스승 목사가 계셨죠. 그런데 그 스승이 지금은 권력욕이 생겨서인지 욕을 먹고 계시더라구요. 그분이 이름이 알려지자 인권위원회 위원을 하셨어요. 사실은 적십자 총재를 하고 싶어하셨죠. 여당에서 그분을 윤리 위원장으로 모셔갔어요. 거기서 그분이 정치를 배우신 것 같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정치평론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목사들이 초심을 잃고 쓰러지고 있었다. 성경을 보면 마귀가 자기에게 무릎을 꿇으면 권력과 부를 주겠다고 유혹했다. 약한 인간은 돈과 권력 앞에서 약해지기 마련인 것 같다. 그런 탐욕과 어리석음을 평생 이겨내야 진정한 성직자가 되는 게 아닐까.

진정한 신자도 하늘이 만드는 것 같다. 망상 바닷가 마을 작은 교회를 갔다가 나는 독특한 신자 부부를 발견했다. 실버타운에 잠시 같이 살던 노부부였다. 남편은 팔십대였고 부인은 칠십대였다. 실버타운에서 부인의 일과는 성경 필사였다. 밤이고 낮이고 방에서 손에 볼펜을 쥐고 공책에 성경을 썼다.

성경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쓰더니 어느 날부터 시골교회로 갔다. 그 영혼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교회 부엌에 들어가 시골노인들인 교인들의 점심을 준비했다. 김밥을 더 맛있게 하기 위해 밤새 우엉을 삶아 얇게 썬다고 했다. 고기와 야채를 사다가 밤새 국물을 우리기도 했다. 모두 자기 돈이었다. 나이먹은 그 부부는 갑자기 쓰러져 몸이 마비된 홀로 사는 노인을 자기들 차에 태워 요양원까지 데리고 가서 수속을 밟아주었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그 부인은 자기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내게 말했다. 거칠고 사람들과 다투는 성격이었다고 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을 하기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성경 필사를 하니까 자신의 영혼이 변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내게 말했다. 성령이 씌워진 것 같았다.

신자는 목사의 설교가 아니라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새로 형성되는 시골의 ‘따뜻한 교회’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높은 하나님이 스스로 낮은 인간이 되어 세상으로 들어왔다. 지독히도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가난한 마리아의 목수 아들 아닌가?”라고 했다. 흙수저 출신이라는 소리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재산과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기도 한다. 인간이 된 하나님은 세상에서 학대를 받고 십자가 위에 올라 끔찍한 고통을 당했다. 세상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해 보는 하나님다운 화끈한 태도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모세혈관같이 퍼져있는 시골교회를 예수를 닮은 목사들이 채웠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경제보다 정신적인 성장이 아닐까. 국가도 빵만으로 사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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