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이재명 재판부…”공정하게 재판해 나쁜 놈들한테 나쁜 놈 소리 듣길”

현직 법원장인 친구와 함께 동양철학 강의를 들으러 다닌 적이 있었다. 우리는 둘다 크리스천이다. 강의가 끝나고 근처 까페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눌 때였다.

“동양에 노장 철학같은 귀중한 진리가 많은 것 같아. 얼마 전 교회에서 동양철학 얘기를 했더니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정색들을 하더라구. 착실하고 믿음이 깊은 사람들인데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완고하더라구. 시야가 좁은 목사들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 앞으로 모든 진리를 포용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요즈음 재판을 해 보면 제일 질 나쁘고 독한 사건은 꼭 이상한 목사가 낀 사건들이야. 그런 목사가 개입했다 하면 사건이 꼬여.”

판사는 법원에 오는 극소수의 나쁜 목사들을 보는 것 같다. 그래도 대부분의 선한 목사들이 양떼의 모범이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지 얼마 전 내게 개인적으로 전화가 왔어. 모 대형교회 당회장 아무개 목사라고 당당하게 내세우는 거야. 자기 교회 신자인 국회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는데 봐달라는 취지더라구. 그 얘기 들으니 화가 나더라구. 그래서 목사님이 절 아시느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당황하는 눈치였어. 선거법으로 기소가 된 그 신도를 옆에 세워두고 과시하는 전화라는 느낌이 들었어. 그 목사가 하는 말이 판사인 내가 크리스천이니까 같은 크리스천끼리 도와야 하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더라구. 그래서 내가 크리스천이라면 지상의 법을 더 잘 지켜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면서 박살을 냈지. 내가 선거관리를 하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을 많이 재판했어. 1백만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하면 의원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신중해야지.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속으로 마련했어. 악의적이고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선거운동을 하면 의원 자격을 박탈하고 우연히 설렁탕 한 그릇 사줬다든지 명함을 준 정도는 봐준다는 거지. 몇 달이 지나니까 그 대형교회의 목사가 뒤에서 씹는 소리가 막 들려오더라구.”

판사인 그 친구는 공정한 사람이었다. 주변 평가도 좋았다. 나는 그의 다음 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 내가 재판하는 사건에 잘 아는 변호사 네 명이 붙었어. 요즈음은 판사실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전화를 걸더라구. 내가 법정구속을 시킬 사건이라 뜨뜻 미지근하게 대답을 했지. 그 사건의 선고를 하고 얼마 후 아는 사람의 결혼식장에 갔는데 그 변호사들이 거기 있었어. 예전 같으면 반갑게 아는 체 할 텐데 외면하고 가버리더라구. 판사를 하다 보니까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뚝뚝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위증교사 혐의 관련 1심 결심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판사는 사회의 십자가를 지는 그런 직업이다. 잘못이 없어도 칭찬보다 미움을 더 받는다고 할까. 그가 덧붙였다.

“법원 내에서도 나를 미워하는 판사들이 있어. 호랑이 담배 먹던 옛날 시절이야. 형사 단독판사를 할 때인데 같은 법원에 열 명의 단독판사가 있었어. 접대 경쟁이 벌어질 때였지. 매일 같이 룸살롱을 갔지. 처음에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래서는 안되겠더라구. 예쁜 여자를 보면 마음도 이상해지고 말이야. 그래서 딱 끊어 버렸지. 그랬더니 판사들 중 두 명은 나를 아주 미워하더라구. 또 그중 두 명은 존경해 주기도 하고. 하여튼 그랬어. 아무리 정결해도 세상에서 비난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하더라구. 예수도 마귀라는 소리를 들었잖아? 내가 판사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 좋은 사람한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나쁜 사람한테는 나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그게 진짜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이야. 나쁜 놈한테 좋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게 뭐겠어? 줏대가 없거나 같이 나쁜 짓을 한 거지.”

나는 그에게서 살아있는 진리를 배웠다. “나쁜 사람한테는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욕과 비난을 받았다. 그들의 요구대로 거짓말을 해 주지 않고 사건을 조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음이 위축됐던 내게 위로가 되는 진리였다.

요즘 이재명 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선고가 나면 담당 판사들은 어느 한편으로부터는 나쁜 놈이라는 비난을 들을 것이다. 공정하게 재판하고 나쁜 놈들한테서 나쁜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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