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김문수 장관이 바른말을 한다는 생각이다. 나도 친일파라서 그럴까”
국회에서 한 의원이 김문수 노동부 장관을 앞에 불러세우고 물었다.
“일제시대 한국인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김문수 장관의 말 한마디가 많은 민주당의원들의 공격하는 표적이 되어 있었다. 장관은 뉴라이트 친일파로 몰리고 있었다. 그걸 아는 장관이 국회의원에게 되물었다. “일제시대 살았던 의원님 아버지 어머니 국적은 어디였습니까?”
“우리 부모님의 국적은 대한민국이었고 상해임시정부였습니다.”
“나라가 없었던 때인데 국적이 대한민국이라구요? 그러면 당시 손기정 선수는 왜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했죠? 그리고 상해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 아닙니까? 국가가 아니죠. 그 정신은 우리가 계승해야 하지만 국가는 아니었죠.”
그 국회의원의 말이 사실일까. 일제시대 그 아버지 어머니는 국적이 있지도 않았던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친일 관계 소송을 맡아 오랜 시간 국립도서관을 다니면서 일제시대 자료들을 뒤적이며 공부했다. 개인이나 사회나 불편한 진실들이 많았다.
일제시대 김문집이 쓴 ‘조선 민족의 발전적 해소론 서설’이라는 논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유일한 길은 일본인과 권리와 의무를 동일하게 향유하는 신민이 되는 길이다.”
독립선언문을 썼던 이광수는 <매일신보>에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의 시민권자로서 일본인과 대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 조선인은 조선인임을 완전히 잊어야 한다. 피와 살과 뼈가 아주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
그들은 진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일본 국적을 가진 일본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 시대 최고 엘리트로 인정받던 최재서에 대한 글을 발견한 적이 있다. 최재서란 인물은 경성제국대학 문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사람이었다. 당대 영어 실력이 최고였다. 그는 일본 영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영문학 연구>에 자주 논문을 게재한 조선인 천재였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국민복을 입고 전투모에 각반까지 차고 있었다. 그는 총독부 고위층이나 일본군 사령부의 높은 사람들과의 연줄을 자랑했다. 그는 친구를 이렇게 꾸짖었다.
“왜 각반을 차고 다니지 않지? 그런 행동을 하면 당신은 위대한 일본국민이 아니야.” 글을 쓴 이는 최재서의 그런 모습이 당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회색지대 지식인의 모습이었다고 적었다.
국립도서관의 인문학 서적들이 쌓여있는 서가를 뒤지다가 그 시대를 살았던 김진웅 교수가 일제시대 말 경성의 모습을 묘사한 이런 글을 봤다. <전차를 타고 남대문 앞을 지나갑니다. 전차의 차장이 “지금 조선신궁 앞을 통과합니다” 하면 승객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남산을 향해 절을 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작가 이병주씨는 이런 글을 남겼다.
‘해방 전 5년 동안을 보면 우리 민족은 타락의 극에 이르렀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서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공기마저 거짓으로 물든 생활 상황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 5년 동안 민족은 마침내 파산해 버렸다’
사회주의자 인정식은 1939년 4월호 시사잡지 <삼천리>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렇게 한탄했다. “개개인이 전향한 것이 아니라 민족으로서의 조선인 전체가 일제에 전향했다.”
자료를 통해 본 그 시대의 넓은 부분에 칠해진 색깔이었다. 불편한 사실을 다루는 수준이 그 사회의 성숙도가 아닐까. 편협한 역사관을 가진 학자들은 존재했던 사실을 부인하려는 것 같다. 자기가 선택한 소수의 초인이나 글 한 조각에 근거해 그 시대의 색깔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들이 만든 사실을 강제로 사람들의 머리에 구겨 넣으려고 한다. 사슴을 말이라고 해도 무조건 호응해 주는 특별한 군중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내가 사는 이 시대의 공기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 친일파다. 친일파가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노무현 정권초 열린우리당에서 다시 입법을 했다.
위원회를 만들어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색출해 명단에 올리고 그 자손에게서 재산을 빼았았다. 그런데 친일파 척결의 법을 제안한 의원의 아버지가 일본 헌병 간부였고 또 다른 의원의 아버지가 일본 경찰이었다.
아직도 친일파가 많이 남은 것 같다. 일제시대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면 친일파라고 한다. 또 그 시대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해도 친일파라고 한다. 그 시대 부모의 국적이 대한민국이라고 말한 의원같이 말을 해야 정답인 것 같다.
나는 김문수 장관이 바른말을 한다는 생각이다. 나도 친일파라서 그럴까. 그 시대를 살았던 작가 이병주는 공기마저 거짓으로 물들었다고 했다. 지금 이 시대의 공기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