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이 만난 사람] “오직 그 생각뿐”…KLO부대 출신 대한민국 원전1세대 이창건 박사
12월 27일은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이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4백억 달러(당시 환율 약 47조원)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4기 수주를 기념하여 제정한 날이다. <아시아N>은 이 날을 앞두고, 대한민국 원자력 분야의 산증인이자 6‧25전쟁 때 미군 특수부대인 KLO(Korea Raison Office)부대 요원이었던 이창건(李昌健‧95) 박사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인터뷰했다. <편집자>
-10년 만에 뵙습니다. 편찮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지난 1월 종교단체 행사(이 박사는 독실한 감리교인이다) 발표자로 섰다가 변고가 생겨 응급센터에 긴급 이송되는 불상사를 겪었다오. 병명은 패혈증인데, 점차 회복이 되어 이제 막 바깥 출입을 시작한 셈이죠.”
-연세도 있으시니 각별히 조심하셔야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난 몇 년 동안 원자력계가 그야말로 천지개벽, 경천동지할 정도로 변화를 겪었죠?
“지난 정부에서였죠.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면서 최대 규모 수출 상품으로도 각광 받고 있고, 아직은 대안 없는 청정에너지이기도 한 원자력 발전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지속적으로 원전 축소를 시도해 가동 중인 24기 중 절반 가까운 11기를, 그것도 수천억 원을 들여 폐쇄하고 건설 중인 원전의 준공 여부도 확정하지 않는 등의 정부계획안을 발표해, 세계에서 가장 싼 전력으로 그나마 어려운 가계에 시름을 놓을 수 있었던 서민들의 이마에 주름을 깊게 드리우게 했어요.”
-눈여겨 볼 것은 그 동안 원전 증설에 소극적이었던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오히려 적극적인 증설 러시에 들어갔다는 점인데요.
“코리아가 주춤하고 있으니 ‘일단 찬스다’ 하고 밀어붙이기 시작한 거겠죠.”
-그게 전임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본 영화 한 편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데 말입니다.
“나도 들었어요. 문재인씨가 제19대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 중이었던 2016년 12월,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의 붕괴를 모티브로 제작했다는 영화 <판도라>를 관람하고 나오면서 “영화를 보며 폭풍 눈물을 흘렸다“며 ”전 국민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한다“는 멘트를 했죠. 이때 원전 파괴가 예고됐었죠.
-영화 <판도라>가 재난영화 치곤 잘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 현실과 맞아 떨어지지도 않고 더욱이 우리나라 원전 안전도가 세계 1위 아닙니까?
“그런 감성적인 접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은 물적, 기술적 피해와 국제경쟁력 약화는 또 어떡하고요. 원전은 종합 경제인프라예요. 우선 원전 4기 기준으로 2백만평(6백60만㎡)의 부지가 필요해요. 그것도 바닷가에요. 여기엔 원전 자체만이 아니라 각종 지원시설, 협력업체 등까지 아우르는 초대형 산업단지라고 봐도 무방하죠. 앞서도 얘기했듯 원전을 수출할 경우 단위 물량으로 수십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수출상품이 된단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을 이미 확보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도 현실을 모르고 무조건 원전 고사작전으로 가니 원자력계가 그야말로 줄초상이 났었죠. 원자력 연구자들도 의기소침해지고, 원자력학과를 지망하던 우수인력들이 다른 전공으로 빠져나가고. 아무튼 지난 몇년은 우리 원자력 계통에겐 최악의 나날들이었어요.
-다행히 윤석열 정부 들어 원전 증설 정상화와 함께 원전 수출도 활성화 돼, 24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주에 성공했죠.
“업계와 관련 연구진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체코 대통령을 두 번이나 만나 협상을 밀어붙인 게 주효했다고 봐요. 이런 프로젝트는 최고 통치권자들 간의 합의가 중요합니다. 지난번 UAE 원전 프로젝트 수주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비즈니스 마인드로 마지막까지 밀어붙여 성사된 거거든요.
-문제는 그때나 이번이나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천기술 태클이라든가 비리 의혹 제기라는 난관에 부닥치는 것 아닌가요.
“그게 다 경쟁자였던 프랑스측의 공작(?) 때문일 거예요. ‘한국산 원전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특히 비리와 관련한 투명성 문제를 제기해 봐라’ 이렇게 부추기니까, 미국으로서야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식으로 태클을 거는 거죠,”
-지난번 UAE 원전 계약 직후에도 외국 언론에서 같은 문제 제기를 했죠?
“그래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사단이 당시 방한했을 때, 제가 한국전력산업기술기준(KEPIC) 위원장으로 그들을 응대했거든요.”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그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원전과 송배전 설비의 설계, 제작, 건설, 운영, 폐로(폐기물 처리 포함) 등에 관해 5년마다 발행한 매뉴얼을 공개함으로써 실사단으로부터 신뢰를 얻어 UAE 원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원전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할 수 있나요. 대략 세계 5위 정도로 보지 않나요?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2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미국이야 명실공히 1위라 치부하고, 다음이 영국, 프랑스, 대한민국의 각축전인데, 대규모 원전 국제 입찰에서 영국은 침묵 상태이고, 우리와 프랑스가 맞붙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UAE에서도, 체코에서도 우리가 승리했으니 결국 우리가 2위 아니냐, 이렇게 보는 거죠. 특히 공사 관련 비리가 가장 없는 게 우리 원전산업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는 데 그게 무엇인지요?
“중소형 다목적 일체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를 말하는 건데요. 출력은 약 100MWe 전후. 건설비는 1조원 규모이고 원자로 추가는 7천억원 상당이며, 건설기간은 3년 정도에 불과합니다. 주요 계통을 단일 원자로 용기에 넣어 각 계통의 연결부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취약점을 제거한 것이 특징인데, 에티오피아 같은 개발도상국에 안성맞춤인 노형입니다. 개도국으로선 세계은행 자금으로 어렵지 않게 스마트 원자로를 건설하여 전력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거든요.”
-저희가 궁금한 게 북한의 원전 수준인데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수준이야 상당합니다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수준은 기준치 이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중국이 30만명의 핵무기 기술 인력 중 절반을 원전쪽으로 돌렸는데도 아직까지 세계 수준에 못 미치고 있거든요.
-박사님은 전기공학도신데 어찌하다 원자력 전문가가 되셨나요?
“6.25전쟁이 끝나고 거리를 걷는데, 3년 선배인 현경호 형(후에 원자력원구소장 역임)이 같이 공부하러 가자는 겁니다. 무슨 공부인가 했더니 원자력 공부예요. 물리학도도, 화학도도 있어서 종합 학술서클이었지. 돌아가며 자기 분야를 강의하는데(‘에브리바디 프로페서, 에브리바디 스튜던트’), 난 막내라고 타이프 치는 역할만 했어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원자력을 공부하게 됐고 논문도 원자력을 썼지만, 정작 학위는 전기공학으로 받았지요.”
-원자력과 관련해 감투(?)도 여럿 쓰셨지만 가장 자랑스러운 직책은 역시 국제원자력학회협의회 의장이셨죠?
“부회장 3년만에 2001년 만장일치로 의장에 선출됐는데 그건 정말 영광스런 자리였어요. 세계의 내로라하는 원자력 학자들의 집합체이거든요. 2012년 공로패까지 받아서 진정 고마웠죠.”
-박사님 이력 중에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이 8240부대 KLO의 특수요원 신분인데요. 어찌해서 첩보요원이 되셨는지요?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 2년 재학 중 6‧25전쟁이 터졌어요. 군대는 가야겠는데, 나이가 안 된다는 거예요. 할 수 없이 미군 특수부대인 8240부대 KLO에 입대했죠. 영어 좀 한다고 인정받아 위관급으로 침투요원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어요.”
-일종의 본부 포스트군요.
“그랬죠. 우리 대원들은 저 위쪽, 평북 강계까지 침투했거든요. 야간에 침투대원 중 통신요원들로부터 전문을 받아 한글과 영문으로 해독을 해 보고하고, 지시가 내려오면 그걸 다시 암호 전문으로 침투 요원들에게 송신하는 거죠.”
-그동안 국가유공자 예우를 받지 못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미군 소속이었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국가유공자로 예우를 해줄 수 없다는 거예요. 증빙 또한 마땅치 않았고. 그래서 우리 켈로 부대원 출신들은 그저 그렇게 지내올 수밖에 없었죠.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보훈부가 나서서 검증도 해주고 해서 국가유공자 대우를 받게 되었고, 2023년 6월 14일엔 청와대에서 국군의장대를 사열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댁에 들어오기 전 현관 옆에 부착된 ‘국가유공자의 집’ 패를 봤습니다만, 전우를 생각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는 말씀 하시곤 했죠?
“1953년 7월 20일 북으로 요원 수십명을 침투시켰어요. 그런데 7월 27일 전격적으로 정전협정이 발효됐잖아요. 그때 침투한 요원들은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요. 상부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지만 저로선 지금껏 가슴에 꽂힌 비수로 남아 있습니다.”
-그 분들도 박사님의 마음을 헤아리겠죠.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서글퍼요.”
-건강 두루 챙기시고 가끔씩 뵙고 싶습니다.
“내가 저 세상 가기 전에 우리나라 원자력이 세계 1위가 되는 쾌거를 꼭 보고 싶어요.”
아흔 다섯 이창건 박사는 온통 대한민국 원자력과 켈로부대 전우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