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의대에서 뭘 가르칩니까?”
한 젊은 의사가 탄광촌 의무실에 취직했다. 그는 의대 동기생 사이에서는 가장 형편없는 직장에 가게 된 셈이다. 동기들 중에는 교수를 바라보고 대학에 남은 경우도 있고 도시에서 의원 개업을 하기도 했다.
그가 탄광촌에 간지 얼마되지 않아 낙반 사고가 일어났다. 지하갱도가 무너진 것이다. 급한 연락이 왔다. 광부 한 명이 바위에 발이 깔려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선생님이 갱도 안으로 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두렵고 싫었다. 그러나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의료기구가 든 가방을 챙겨 들고 깜깜한 지하갱도로 내려갔다. 새까맣게 탄가루을 뒤집어 쓴 광부 한 명이 신음하고 있었다. 묵직한 바위가 그의 발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우르릉 하는 소리가 나면서 땅속이 흔들렸다. 얼음같은 지하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발목을 절단해야만 광부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젊은 의사는 수술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메스를 들고 발목 절단을 시도했다. 갱도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천정이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석탄 가루와 범벅이 된 질척한 피가 바닥에 고이고 있었다. 마침내 광부를 바위에서 일으킨 의사는 광부를 부축하고 밝은 세상으로 올라왔다. 무섭고 힘들었지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게 의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음으로 자리를 옮겨 취직한 것은 시골 의원이었다. 시골 의사가 하는 일은 갑자기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왕진을 가는 일이 많았다. 비가 축축하게 내리기 시작하던 어느 날 밤 1시경이었다. 왕진을 갔던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의 숙소인 의원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 포곤한 침대에 눕고 싶었다. 그때였다. 다급하게 의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급환자가 생겨 그 가족이 달려온 게 틀림없었다.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뒤에 그 마을을 오래 지켜온 늙은 의사가 서 있었다.
“이런 게 의사의 운명이라네. 받아들이게”
그는 다시 의료기구가 담긴 가방을 들고 의원 문을 열었다. 진흙탕이 된 길바닥 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의 시골 의사 생활은 계속되고 있었다. 도시에 있는 의대 동기들은 대학병원의 교수가 되기도 하고 개업의로서 벌써 부자가 된 친구도 있었다. 그도 돈을 벌고 싶었다. 그래서 틈틈이 모은 월급으로 주식투자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통이 시작됐다는 산모의 연락을 받고 그 집으로 갔다. 아기는 나오지 않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주식장이 열리고 그가 주식을 팔아야 하는 시간이 됐다. 바로 그 때 엄마의 몸에서 피범벅이 된 아이가 머리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기의 미끈거리는 양발목을 잡은 그가 그만 아이를 놓쳐 버렸다. 순간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를 들어 올려 거즈로 피를 닦아주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증권을 매도할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는 ‘이게 의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소설가 이문열씨가 사는 여주의 부악문원을 찾아가 그의 집필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전문직이라 그런지 그가 얘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의사나 변호사는 절박한 사람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생명이 위태한 걸 이용해서 비싼 댓가를 요구하면 누가 그걸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변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당황한 사람에게 거액을 뜯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전문직들은 양심에 기초한 높은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겁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왜 변호사가 됐을까를 수시로 자신에게 물었다. 세상의 비난처럼 자격증을 가진 도둑일까? 토스토엡스키가 말한 것처럼 고용된 양심일까? 자본주의의 첨병일까를 생각했다.
윤석열이 대통령인 이 시대 최대의 화두가 ‘의료대란’이다.
큰 병원을 지키던 전공의들이 의대생 증원을 반대하는 집단항의로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었다. 그들의 요구는 의사를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신문에서 집단행동을 한 전공의들의 절반이 성형외과나 피부과에 취직해서 쌍거풀 수술을 하고 피부의 점을 빼준다는 것이다. 그 쪽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집단행동이 던진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들의 철학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의사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다. 문득 오래 전 만났던 보건 복지부장관의 길다란 얼굴이 떠오른다.
2005년 1월 10일 오후 7시경이었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간 추운 날씨였다. 나는 연세대 의과대학 앞 회관 3층에서 의료계를 대표하는 의사들과 함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고 있었다. 장관이 의료계의 불만을 듣는 자리였다. 그때도 핵심은 의료수가 인상과 법적책임 면제였다. 다 듣고 난 김근태 장관이 단호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의료시장주의는 실패했습니다. 그 좋다는 미국을 놔두고 동포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귀국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사분들은 그런 미국이 부러우십니까? 저는 냉혹한 의료시장은 사회를 분열시킬 것으로 봅니다. 저는 우수한 인재들을 끌어모은 의대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의문입니다. 공부를 잘했다고 자기들만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유아적 이기주의가 의사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게 했다는 생각입니다. 의대에서는 국민들이 건강하게 잘 살게 하려는 정신도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저는 보사부 장관으로 의사들보다는 국민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거의 20년이 흘렀다. 의사협회장 입에서 쌍욕에 가까운 말이 나온다. 장관이 그리고 대통령이 어떤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