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가치있는 근심을 끌어안는 인생

이사야 32장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 32:9)

아무 염려 없이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어느새 나태해지고 안일해지고 공허해지기도 합니다. 아무 염려 없이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염려를 안고 사는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근심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결정입니다. 나 중심적 염려에서 풀려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염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온통 이 걱정으로 가득하던 인생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인생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내 문제로 근심하고 걱정하며 기도를 시작했다가 어느새 타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곧 내 기도가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중요한 성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근심과 염려를 잠재우는 마취제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종류의 근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 참여하다가 내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생긴 근심은 더 이상 근심거리가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아무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고, 염려도 없이 사는 삶은 부러운 게 아니라 불쌍한 것입니다. 주변만 둘러봐도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는데 어떻게 나 혼자만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세상은 전쟁과 기아와 기후 문제 때문에 지금도 신음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데 아무 탄식 없이 산다는 건 성령과 상관 없이 산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행복은 근심 없는 인생이 아니라 가치있는 근심을 끌어안는데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근심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아무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고, 염려도 없이 사는 삶은 부러운 게 아니라 불쌍한 것입니다. 주변만 둘러봐도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는데 어떻게 나 혼자만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사진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친구로 살다가 떠난 이태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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