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의사란 전문직을 다시 생각해 본다”

CBS방송의 앵커가 전공의들 사이트 안에서 도는 글들을 보도하는 걸 들었다. 응급실에서 치료받지 못해 천명쯤은 죽어 나가야 한다고 글을 쓴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죽지 내가 죽느냐고 썼다는 것이다. 그런 싸이코 패스도 있는 모양이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나는 화가 난다. 전문직은 돈만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자기만 잘 먹고 잘사는 데 있지 않다. 그걸 천직으로 만들어 준 하늘의 소명이 있다.(본문 가운데)

2005년 1월 22일경이었다. 나는 LA에서 뉴질랜드로 가는 배 안에 있었다. 배의 둥근 현창을 통해 태평양의 넘실거리는 검은 파도가 보였다. 언덕 만한 파도는 불쑥 솟았다가 어느 순간 내려앉곤 했다. 배는 거센 파도를 능숙하게 올라타며 바다를 미끄러져 나가고 있었다. 그 배에서 나는 60대 후반쯤 되는 두 명의 의사를 만났다. 한 명은 공산권인 루마니아 의사였고 다른 한명은 미국 의사였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이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 배의 식당에서였다. 내가 식사하는 식탁 앞에 키가 크고 허리가 구부정한 백인 노인이 앉아서 스테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루마니아인 의사였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연히 한국 텔레비전을 봤어요. 서울에 사는 젊은 사람들 공산주의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거 아주 위험해요. 공산주의는 사실 몇 사람만 잘사는 거예요. 나는 어려서부터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왔어요. 당 간부같은 일부 사람만 잘 살았어요. 보통사람들에겐 모든 게 나빴어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한국이 좌경화 된 것으로 보는 것 같았다. 양극화의 현상은 공산권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고 공산권에서 의사는 잘 사는 일부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20년 전 의사로 북한에 가 봤어요. 루마니아 하고 북한이 서로 의사를 교환했어요. 북한이 너무 가난하고 비참해 보였어요. 음식을 먹는데 상 위에 덩그렇게 배추가 올라와 있더라구요.”

공산권 국가끼리 의사를 교환한다는 얘기가 신기했다. 내가 금강산을 갔을 때 식탁 위에 맨 햄버거빵이 놓여있었다. 빵 사이에 넣어먹을 걸 달라고 하자 식당 종업원은 양재기에 든 강된장을 가져다 주었다. 먹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루마니아인 의사가 열악한 북한에 가서 꽤나 고생을 한 것 같다.

같은 배 안에 있던 미국인 의사 얘기는 달랐다. 한국이 못살던 197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30년간 의사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내게 돈 번 자랑을 했다.

“미국에서 콘도를 여러 채 샀어요. 시카고에서 제일 높은 잔 핸콕 빌딩에도 투자를 했죠. 이번에 퇴직하면서 큰딸, 사위, 아들, 막내딸에게 기념으로 각각 20만불씩 줬어요. 미국 콘도를 팔아서 서울 강남의 타워팰리스를 사려고 해요. 한 20억원 주면 산다고 하더라구요.”

그는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제적 성공이 다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

“의대 선배인 한국의사는 돈을 벌려고 쉬지 않고 수술만 하더라구요. 아버지가 죽어 장례식장에 있는데도 수술하고 있었어요. 또 어떤 때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최고로 비싼 빨간 오픈카를 타고 달렸어요. 내가 한번 그 선배의사 혈압을 쟀는데 수치가 200도 넘어요. 의사인데도 약도 안 먹어요. 그러다가 경동맥에 문제가 생기고 시력도 다 잃어버리고 나이 칠십에 죽어버렸어요. 죽고 나서 보니까 돈도 한 푼 없더라구요. 참 허무한 인생이예요.”

나는 공산권에서 살아온 의사와 자본주의 미국 의사 양쪽에서 진정한 의사의 상을 찾을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신현확 보사부 장관은 돈이 없어 응급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 국민은 없어야 하겠다며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했다. 의사들의 잘살고 싶은 욕망을 어느 정도 억제시키고 사회적 의무를 부여한 셈이다. 국가 지도자가 의사를 보는 시각은 달랐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가 됐다.

공산주의 창시자 레닌도 인간의 욕망은 이길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들은 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코를 올리고 쌍거풀을 하고 점을 빼주는 성형외과 피부과로 의사들이 몰렸다. 응급실에서 다친 환자를 급하게 수술해야 하는 외과 의사나 산모를 받아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 그리고 아픈 아기들을 돌보는 소아과 의사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정부에서 의대증원을 결정했다. 미용이 아니라 응급실을 지킬 의사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의사들이 대대적으로 저항에 나섰다. 전공의들이 응급실을 비워둔 채 나갔다. 국민들이 아플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CBS방송의 앵커가 전공의들 사이트 안에서 도는 글들을 보도하는 걸 들었다. 응급실에서 치료받지 못해 천명쯤은 죽어 나가야 한다고 글을 쓴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죽지 내가 죽느냐고 썼다는 것이다. 그런 싸이코 패스도 있는 모양이다. 극히 일부이겠지만 나는 화가 난다.

전문직은 돈만 보고 하는 게 아니다. 자기만 잘 먹고 잘사는 데 있지 않다. 그걸 천직으로 만들어 준 하늘의 소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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