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병(病)도 그분이 보내는 메시지”

느릿느릿 걸으면서 오후의 해파랑길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쇳소리가 나는 거센 숨소리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돌아보니까 커다란 안경을 쓴 아이가 지쳐 보이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할아버지, 여기서 감추사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려요?”

감추사

감추사는 파도가 들이치는 검은 바위 위에 세워진 동해안의 외딴곳에 있는 절이었다. 천년 전 백화병에 걸린 신라의 공주가 와서 기도하고 그곳에서 죽었다는 작은 절이다.

“한 십오분쯤?”
내가 대충 짐작을 얘기해 주었다.

“아이고, 아까 만난 사람이 십오분쯤 가면 나온다고 했는데 지금부터 또 십오분이 걸린단 말이예요? 나 물이 없어서 목도 마르고 힘들어 죽겠네.”

“그러면 이걸 마셔요”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건네주었다.

“아니예요. 마시려면 제가 병에 입을 대야 하잖아요?”
“괜찮아요. 아예 그냥 가져가요”

나는 어려 보이는 그가 바닷가의 외진 절로 가려는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감추사를 왜 가요? 구경하려고 가는 거예요?”

“아니요, 내가 병이 있는데 그걸 고쳐달라고 절을 하려고 가요. 내가 원래는 크리스찬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한테 빌어도 들어주지를 않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부처님한테 부탁해 보려구요.”

“그렇구나…”
나는 그 아이가 종교성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물었다.
“어느 중학교 다녀요? 아니면 고등학교 다니나?”

“아니예요, 저 성인이예요. 스물여섯살이고 여자예요.”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잘못 보았다. 아니면 상대가 병자라서 그렇게 보였을까.

나는 그를 연등이 달린 절 입구까지 안내해 주고 내 길을 걸어가면서 돌이켜 보았다. 성경 속 얘기같이 내 주위에서 병을 고친 기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까 있었다. 내가 아는 변호사가 있다. 그는 전국 수능에서 2등을 하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수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어느 날부터 온몸에 흰 반점이 나는 피부병이 생겼다. 큰 병원을 가서 진찰 받았지만 의사들은 명확한 치료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온몸에 버짐같은 하얀 얼룩이 퍼졌다. 그는 우연히 LA에 기도로 병을 고치는 성자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는 차를 몰고 그 성자를 만나러 갔다. 성자가 그를 보고 기도하는 순간 그의 몸이 갑자기 진동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고 했다. 과학도니까 하나님이 물리적으로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후 그의 피부병이 씻은 듯 나았다. 그는 내게 자신이 그분의 증명자가 됐다고 했다. 그는 신학대학에 가서 목사가 되고 지금은 목사와 변호사를 겸직하며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자에게도 그렇게 ‘짠’ 하고 나타나 지금도 기적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중동의 사막지대에 갔다가 독충에 물렸다. 몇 달이 지나야 그 증상이 피부에 슬며시 나타나는 병이었다. 피부가 욕창같이 녹아내렸다.나는 여의도성모병원에 있다는 그 노 의사를 찾아갔다. 이미 퇴직하고 이따금씩 나와 환자를 보는 분이었다. 그는 고름이 배어나오는 상처에 코를 바짝 대고 냄새를 맡았다. 다른 대학병원의 피부과 의사들은 감염이라도 될까봐 피했었다. 그 노 의사 덕분에 나의 피부병은 깨끗이 나았다. 나는 노 의사의 내면에 있는 천사가 보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직접 병을 고쳐주기도 하지만 의사로 분장한 천사를 통해서도 고쳐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병도 하나님이 보내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사막에 사는 독충의 일종인 아라비아팻테일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중동의 사막지대에 갔다가 독충에 물렸다. 몇 달이 지나야 그 증상이 피부에 슬며시 나타나는 병이었다. 피부가 욕창같이 녹아내렸다. 대학병원 피부과 의사가 징그러운 뱀을 보듯 떨어져서 상처를 쳐다 보았다. 국내에서 치료할 약도, 방법도 없다고 했다. 미국이나 중동의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살이 패여 가면서 정강이뼈가 드러나는 걸 보고 울었다. 나는 매일 새벽 교회에 가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벤허>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문둥병에 걸린 엄마와 누이가 단번에 낫는 장면이 있었다.

성경을 보면 나아만 장군은 예언자가 시키는 대로 강물에 가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을 고쳤다.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기적은 일어날 리가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어느 날 내가 아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해외에 의료봉사를 다니면서 독충에 물린 상처를 치료해 본 경험이 있는 의사가 한 분 계시는데 찾아가 보라고 했다. 나는 여의도성모병원에 있다는 그 노 의사를 찾아갔다. 이미 퇴직하고 이따금씩 나와 환자를 보는 분이었다.

그는 고름이 배어나오는 상처에 코를 바짝 대고 냄새를 맡았다. 다른 대학병원의 피부과 의사들은 감염이라도 될까봐 피했었다. 그 노 의사 덕분에 나의 피부병은 깨끗이 나았다. 나는 노 의사의 내면에 있는 천사가 보는 것 같았다. 하나님은 직접 병을 고쳐주기도 하지만 의사로 분장한 천사를 통해서도 고쳐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 병도 하나님이 보내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가까이 오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고난이나 고통, 슬픔이 아니면 사람들은 그분을 찾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게 가벼운 인간들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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