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도인같은 목사 김흥호 “천당 가서 낮잠 자지 않을 거야”
2007년 9월경이었다. 어둠침침한 강당에서 사람들이 모여 도인(道人)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는 조용헌씨는 그를 도인이라고 했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도인은 얼굴이 하얀 여든여덟 살의 자그마한 노인이었다. 그는 유 불 선 기독교의 경전을 12년을 읽어나갔다고 했다. 그가 젊은 시절 번역한 <대학>(大學)에 대해 다석 류영모 선생은 그가 번역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소리라고 평가했다. 나는 성경을 보고 또 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성령이 알려주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도인을 찾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도인의 말 중에 이런 부분이 귀에 들어왔다.
“그 시대 200만명 정도가 예루살렘에 와서 소와 양을 바쳤지. 헤롯이 성전을 세우고 수입을 올리려고 했어요. 바리새인 제사장은 제물을 헤롯 하고 나눠 먹었지. 바리새인은 일종의 착취기관이야. 조선시대 양반 비슷하다고 할까. 정약용은 양반들이 착취하는 모습을 정확히 기술했어. 정직하고 바른 말을 하면 잡아 죽이는 게 조선의 풍조였어. 왕이 부르면 권력과 금력이 오는데도 퇴계는 벼슬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지. 하는 수 없이 잠시 두번 한 적이 있지. 왕에게 여덟 달 동안 유교를 가르치고 소백산맥 아래에서 풍기군수를 했었지.”
바리새를 유교의 양반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게 특이했다.
“예수는 성전을 허물라고 했어. 헤롯이 죽이려고 하니까 예수가 시리아로 넘어가서 헤르몬 산으로 간 거지. 예수는 그때 자신도 세례요한처럼 죽을 것을 예상했어. 죽을 걸 결심했어. 육체로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을 대항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지. 예수는 그 산에서 자신이 죽으면 더 차원 높은 영적인 존재로 변하는 걸 깨달은 거야. 미이라가 된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어떤 존재가 된다는 걸 안 거지. 좀더 빛나고 힘센 어떤 존재지. 예수는 하나님의 소리를 세 번 들어. 세례 받을 때, 헤르몬 산에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들었지.”
예수는 죽어서 새로 태어나겠다며 십자가 위에 올라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도사노인의 말은 계속됐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악질 중의 악질이 그때는 바울이었어. 영체가 된 예수가 그에게 들어가 그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거야. 바울을 시작으로 많은 바리새인들이 변했어. 육적인 예수가 못해낸 걸 영적인 예수가 해낸 거지. 2000년이 지난 지금 예수의 영이 한국에 있는 내 안에 들어와서 함께 살고 있어. 예수가 내 안에서 부활한 거지.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란 영적인 부활이라고 생각해. 그리스도가 그때 죽었다면 지금 내 안에 살 리가 없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말하고 있는 거야.
한 단계 높은 예수, 그게 어떤 건지 모르지만 나도 죽으면 한 단계 높은 영체가 되어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천당에 가서 가만히 낮잠 자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불교에서는 새로운 영체를 법신, 보신, 응신, 화신으로 구별하기도 해. 법신이 화엄경이지. 불교사상을 가지고 기독교를 이해하면 훨씬 더 풍부할 수 있어. 불교는 깨닫는다고 하는데 기독교는 믿는다고 하지.”
도사 노인의 넓은 정신세계에 나는 놀라고 있었다. 그는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3월 17일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나는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다. 우물안이란 나의 정신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개구리가 우물 밖의 세상을 보는 순간이 깨달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죽으면 소멸하지 않고 그 영이 빠져나가 새로운 몸을 받고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존재가 되는 것일까.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는 영이 되어 지금도 그를 믿는 사람들의 내면에 들어가 살아있는 것일까. 예수가 안내를 하던 나라는 그런 영의 세계, 인간 내면의 우주를 의미했던 것일까. 그때 그 도사노인은 이런 말도 했다.
“바울이 삼층천으로 올라갔다는 말은 위가 아니라 자기 마음 속의 삼층천으로 간 걸로 생각해. 내 속에 있는 참나로 말하고 싶어. 정말 정직하게 살고 싶어. 여기 와서 말하는 건 여러분의 성경 이해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서야. 이렇게 가르치고 가면 기분이 좋아. 그 기쁨이 어떤 건지 몰라. 속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와.”
그 도사 노인은 그 5년 후 하늘나라로 간 김흥호 박사였다. 그의 말처럼 영적존재가 되어 하늘나라에서 낮잠을 자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