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지금은 ‘돈 귀신 종교’ 시대

보통사람들이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낸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그들을 뽑아준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돈 귀신의 명령에 따른다. 사법부 역시 돈 귀신이 휘저어 놓은지 오래됐다. 재벌회장이 죄를 지으면 법원은 항상 이 나라 경제에 기여한 점을 참작해 용서한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 전능하신 돈 귀신의 수법이었다. 내가 몸담고 밥을 얻어먹은 변호사 업계는 자진해서 돈 귀신 앞에 무릎 꿇는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 했다.(본문 가운데)

며칠 전 저녁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단골 중국음식점으로 갔다. 외환은행을 퇴직했다는 남자가 경영하고 있다. 금융위기 시절 론스타 펀드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노조위원장이었다고 했다. 그는 지긋지긋하게 검찰과 법원에 불려다녔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펀드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이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미국이 돈 귀신을 섬기는 종교의 성지고 각종 펀드는 돈 귀신의 부하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청교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운 미국이 어떻게 지금은 돈 귀신을 숭배하는 나라로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월급쟁이가 돈 귀신을 섬기는 가장 쉬운 방식은 주식이라고 했다. 매일 노트북을 통해 ‘돈 귀신교’의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는 나이 오십에 은행을 나와 동해에서 목공 일을 배웠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국음식점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주문한 잡채밥을 먹고 있는데 그가 서비스로 군만두 두 개를 가져다 주며 말했다.

“저, 음식점을 문 닫고 인도네시아로 떠납니다. 이제 나이가 육십이 됐습니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 그곳에서 자그마한 공방을 차리고 백년이 가도 꺼떡없는 튼튼한 나무 의자 오십 개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의자를 친구들에게 선물한 후 죽고 싶습니다. 전에 백 개라고 말씀드렸는데 오십 개로 줄였어요.”

특이한 사람이었다. 걱정이 되서 물었다. 
“죽을 때까지 버틸 돈은 있어요?”

“작은 아파트가 한 채 있고 매달 연금이 나옵니다. 그 돈이면 물가가 싼 인도네시아에서 살기에 충분합니다. 자영업이 실패해서 문 닫는 게 아닙니다. 3년 넘게 버텨왔으면 요즈음은 성공한 것으로 칩니다.”

“돈도 벌고 은행 임원이 되는 게 꿈이었을 거 아니예요?”
“그런 거 진작에 버렸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자본주의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자본주의의 신은 돈 귀신인 것 같다. 돈 귀신이 하나님도 부처님도 이기는 것 같다.

변호사로 대형교회 분쟁사건을 다루어 보았다. 우연한 기회에 만났던 큰 교회 목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항상 500억원 정도를 관리해요. 엄 변호사가 나하고 친하면 좋은 일이 많을 거요.”

그의 위세는 재벌그룹 회장보다 더 당당했다. 그를 보면서 내가 되물었다.
“그 돈 하나님 거 아닙니까?”

그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경멸의 눈빛으로 비웃는 표정이었다. 돈 귀신들이 예배당을 점령한 걸 보았다. 천억이 넘는 헌금을 뒤로 빼돌려 사채를 놓는 교회를 봤다. 목사 집에서 현찰이 든 사과상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하나님을 쫓아버리고 돈 귀신을 섬기고 있었다.

불교계 비리를 폭로한 한 스님을 변론한 적이 있다. 고위직 승려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도박판을 벌였다. 뒤로 돈을 빼돌려 빌딩을 사두고 갖가지 불륜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돈 귀신이 부처님도 쫓아버린 것 같았다.

돈 귀신이 대한민국의 행정 입법 사법을 모두 장악하고 농락하는 걸 봤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통령은 청와대에 재벌 회장들을 직접 불러 수천억에 해당하는 뇌물을 챙겼다. 민주화 시대 대통령들도 돈 귀신을 섬기는데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기업가들로부터 받은 거액을 정보기관 비밀금고에 섞어 세탁하고 가신을 통해 관리하기도 했다. 해외로 빼돌린 재산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했다.

보통사람들이 대표를 뽑아 국회로 보낸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그들을 뽑아준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돈 귀신의 명령에 따른다.

사법부 역시 돈 귀신이 휘저어 놓은지 오래됐다. 재벌회장이 죄를 지으면 법원은 항상 이 나라 경제에 기여한 점을 참작해 용서한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 전능하신 돈 귀신의 수법이었다.

내가 몸담고 밥을 얻어먹은 변호사 업계는 자진해서 돈 귀신 앞에 무릎 꿇는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돈만 주면 무슨 짓이든 했다. 나 역시 돈에 영혼까지 팔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돈 귀신은 날뛰는 악당도 바로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미친개를 썩은 고기 몇 조각으로 달래듯 악당들도 돈을 주면 양순해진다. 인종과 문화권에 상관없이 돈 귀신을 섬기는 종교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믿으라고 하지 않아도 누구나 믿는다. 전도도 필요 없다.

인도네시아의 수풀로 들어간다는 중국음식점 주인은 최대의 사이비 이단인 돈 귀신을 섬기는 종교를 벗어난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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