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밥보다 몇배 더 중요한 것
탑골공원 뒷골목 노인과 노숙자들이 모여드는 곳에서 법무장관이 밥을 푸고 전 대법관이 카레를 얹어 주는 모습의 사진이 기사와 함께 나오고 있다. 2024년 9월 29일 아침 조선닷컴의 내용이다. 장관은 혼자 지하철을 타고 무료급식소로 오고 대법관은 15년 전쯤부터 매달 한 번씩 와서 봉사활동을 해왔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선거 때 기자들을 불러 사진을 찍는 정치쑈와는 다른 진실성이 엿보인다. 나도 몇년 전 바로 그 장소에서 ‘거리의 변호사’를 해 본 적이 있다. 가난한 노인동네로 가서 그들과 소통하며 세상을 알고 싶었다.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주는 사람은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법을 주고 싶었다. 급식소 한쪽 구석을 빌려 법률상담을 하는 칸을 만들었다. 상담 하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 앞 골목으로 나가 차일을 치고 플라스틱 책상과 의자를 놓고 길거리 상담소를 만들었다. 이런데 왠 변호사가 있느냐고 그들은 의아해 했다.
거기서 발견한 게 있었다. 주변과 나 자신을 구별 짓는 경계선이 존재했다. 내가 입고 있는 양복과 신분이었다. 그 경계선을 없애야 실체가 보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다음부터 노숙자 같은 허름한 복장을 하고 나갔다. 첫날 갑자기 그곳에서 혁대의 낡은 버클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다급한 김에 길바닥에 버려진 박스를 묶는 비닐끈으로 허리를 동여 묶었다. 영낙없는 노숙자 복장이 되어 버렸다. 무료급식소 앞 길가의 경계석에 노인들과 노숙자들이 횃대 위의 닭들처럼 붙어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사이의 빈 틈에 끼어 앉았다. 자연스럽게 접근해 상담을 할 예정이었다.
무료급식소 배식 시간이 가까와지자 노인과 노숙자들이 그 앞에 길다랗게 줄을 섰다. 무료급식소에서 사람이 나와 번호표를 나누어주었다. 하루에 200명에게만 점심을 제공한다고 했다. 급식소에서 나온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가 딱딱했다. 서로 먼저 밥을 얻어먹으려는 노숙자들과 노인들을 다루려면 그렇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번째 노인에게 마지막 번호표가 주어졌다. 그 뒤에 있던 201번째 노인의 황망해 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70대 말쯤의 남자 노인이었다.
그가 돌아서서 허공을 올려다 보며 “야, 이 개새끼들아”라고 소리쳤다. 그의 눈에 물기가 번들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를 향해 그렇게 하는 것인지 나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예수는 가난하고 불쌍한 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그 골목에서 잠시 거리의 변호사로 있으면서 육체적인 밥보다 더한 그들의 정신적인 허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은 법의 보호밖에 있는 투명인간인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발견한 건 내 주위의 경계선을 없애고 아래로 내려올 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내 주위에는 저절로 깨달음을 얻어가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젊은 나이에 판사가 된 친구가 있다. 좋은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는 기록을 집에 가지고 가서 한밤중에도 판결문을 쓰는 모범적인 법관이었다. 온유한 성격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한번은 “변호사는 판사 때문에 먹고 사는 게 아니니?”라는 말을 내게 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변호사 사회의 비굴함을 그는 말한 것이다. 그에게 변호사의 소명을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법관의 방에 갇혀있고 법대 위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이 전부인 그는 말해도 이해할 것 같지가 않았다. 장자가 말하는 ‘우물안의 개구리’는 그런 좁은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그가 판사 생활을 마치고 나왔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가 달라진 게 눈에 보였다. 새벽에 무료 급식소에 가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든다고 했다.
그렇게 만든 도시락을 쪽방촌 아픈 노인들에게 배달한다고 했다. 그는 내게 쪽방을 돌아보니까 햇볕이 들어오는 손바닥만한 창이 있는 것과 그늘에서만 살아야 하는 방의 값이 차이가 나더라고 알려주었다. 햇볕 한 줌의 귀함을 실감했다는 것이다. 그는 원래 착했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고 착한 그의 본성이 싹을 틔우면서 솟아 올라오고 있었다.
칠십이 넘은 그는 요즈음 ‘나홀로 법률사무소’를 하고 있다. 내가 하던 ‘거리의 변호사’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다.
혼자서 서류접수부터 모든 일을 직접 하는 늙은 변호사가 됐다. 나는 다들 법률사무실 문을 닫는데 이제 늙어서 잘 듣지도 못하면서 왜 법정에 나가 제자 같은 젊은 판사들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변론을 하느냐고 물었다.
“변호사는 판사 때문에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야. 남을 사랑하고 돕는 일을 하는 거야. 그게 진정한 즐거움이지.”
그는 깨달은 것 같았다. 검은 법복을 입고 재판정 중앙에서 근엄하게 앉아 있을 때보다 그의 요즈음 모습이 더 성스러운 것 같다.
예수가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것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이 겸손하면 이 나라는 위대한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밥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