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남의 죄’ 대신 빌어주는 숭고함에 대하여
혼자 동해안을 여행하던 친구가 찾아왔다. 중고등학교 동기였다. 중학교 시절 그를 처음 봤을 때 마치 탱크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유별나게 덩치가 크고 주먹이 세 보였다. 싸움으로 그를 이길 아이가 없을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전국 고등학생 대항 태권도 대회가 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그가 선수로 출전했다. 상대방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그의 펀치력이 무서웠다. 요즈음 아이들 말로 그는 일진의 ‘짱’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주먹 자랑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교내에는 두 그룹의 아이들이 클럽을 조직해서 세력을 다퉜다. 그러다 큰 싸움이 나고 다친 아이가 입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들을 모두 퇴학시켜 버리자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경찰로 넘겨질 학폭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나를 찾아온 친구가 50여년 전인 그때 한 그룹의 대장격이었다. 집 앞 식당에 가서 그와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고 돌아와 고교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어떻게 그때 퇴학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냐?” 내가 물었다.
“학교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큰형과 누나밖에 없었어. 큰형한테 말했더니 자기는 그런 일에 가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더라고. 누나가 대신 가겠다고 했어. 누나는 나 하고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어. 스물세 살이었으니까. 누나가 빨간 옷을 입고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니까 아이들 시선이 쏟아지는 거야. 휘파람을 부는 놈도 있고 말이지. 교장실 앞에서 내가 무릎 꿇고 빌기 시작했지. 누나가 나를 보더니 내 옆에서 같이 무릎을 꿇는 거야. 꼬박 다섯 시간 동안 나 하고 똑같이 그렇게 있었어. 지나가는 선생님이 손에 들고 있던 출석부로 내 버리를 갈기면서 ‘저런 새끼는 퇴학을 시켜야 해’라고 하는데 누나는 말없이 같이 벌을 받았지. 나는 속으로 누나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 누나가 교장에게 준 감동이 동생을 살렸던 것 같다.
남을 위해 빌어준다는 것은 감동이다. 내가 변호를 맡았던 전국구 건달조직의 두목이 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중학교 때부터 패싸움을 하고 돌아다녔어요. 내가 대장이 돼서 아이들을 지휘해 이웃 학교 일진 아이들과 전쟁을 벌였죠. 우리들은 연장도 사용했어요. 몽둥이는 물론이고 칼도 사용했죠. 그러다 열아홉 살 때 큰 사고를 치고 감옥에 들어갔어요. 내가 검사실에 불려 갔을 때 거기 아버지가 계시더라구요. 나이 먹은 아버지가 아들 같은 젊은 검사에게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내 아들 살려달라고 빌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마음이 이상해지더라구요. 우리 아버지는 지역에서 대단한 유지였어요. 학식도, 재산도 뒤지지 않고 인격도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는 분이었어요. 그런 아버지가 깡패가 된 아들 때문에 젊은 검사 앞에서 한없이 비는 모습을 보니까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 올라오는 것 같더라구요. 그때 결심했어요. 앞으로 아버지가 검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일은 절대로 없게 하겠다고 말이죠. 그리고 나도 검사에게 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사업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그 뒤도 평생 건달 딱지가 붙어 다니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는 인기가 높았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건달 두목의 모델이었다.
가족을 위해서 빌어줄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을 위해 대신 빌어주는 직업이 있다. 나는 그게 변호사라고 생각한다.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친 의사가 있었다. 새벽에 묵은 신문지를 주우러 다니는 할머니를 치고 도망 갔다가 검거됐다. 사고를 낸 의사의 변호를 맡은 나는 그 할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노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양쪽 무릎뼈가 부서졌다고 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걷지 못할 것 같았다. 가슴이 찡했다. 나는 대신 잘못했다고 빌었다. 그 노인의 보호자인 아들은 합의는 절대 안해 줄 테니 그런 줄 알라고 못을 박았다. 다친 노인을 놔두고 도망한 운전자가 극도로 미운 것 같았다. 당연했다.
“합의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연합니다. 잘못한 만큼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또 와서 빌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다음날도 가고 또 다음날도 가서 대신 사과했다. 그 할머니의 부서진 무릎을 보니까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아들이 하는 분식집 일을 도왔는데 이제 그 일마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사고를 낸 의사에게 매일 같이 그 할머니를 찾아가보라고 했다. 합의해 달라는 말은 입밖에 내지 말고 진심으로 빌라고 했다. 의사는 매일같이 먹을 걸 사서 그 병원을 찾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노인과 아들은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사고를 낸 의사에게 찾아가라고 했다. 합의하려는 잔꾀는 부리지 말자고 했다.
그 얼마후 모자는 자진해서 법정에 합의서와 사고를 낸 운전자를 용서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해 주었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엎드려 절하는 사죄행위는 쇠라도 녹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내 죄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비는 행위는 더 숭고한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의문인 게 있다. 동생을 위해 무릎을 꿇고 빌어준 누나나 검사 앞에서 아들을 위해 빈 아버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죄를 용서 받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 올라 대신 죽은 예수의 사랑은 너무 커서 그런지 내 인식을 넘어서는 것 같다. 그걸 깨닫고 죽었으면 좋겠다.